“年 7조 인건비 부담”…직격탄 맞은 재계, 대내외 불확실성에 줄소송 리스크까지

대법 “조건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 판결 후폭풍
11년 만에 판례 뒤집어…인건비 부담 급증
국내 기업 4곳 중 1곳 노사 갈등 악영향 전망
경제계 “현장 혼란 불가피, 근본적 개선 방안 필요”


서울 여의도 오피스 밀집 지역의 모습 [헤럴드 DB]


[헤럴드경제=서재근·김성우·한영대·김민지 기자] “조건부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때 연간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건비만 6조7889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업들은 지속해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노사 간 합의까지 무효화되면서 잇따른 소송 제기 등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계 관계자)

재직 여부나 특정 일수 이상 근무 조건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조건부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경제계를 중심으로 “노사 간 갈등과 혼란을 유발시키는 판결로, 늘어나는 대외 불확실성 속에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전날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 전·현직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의 상고심을 선고하면서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요건으로 볼 근거가 없다”며 판례를 변경했다.

통상임금에 대한 기준과 범위가 11년 만에 변경된 것으로, 이로 인해 근로자들의 임금체계와 기업의 경영 활동에 많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임금은 ‘소정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품’을 의미한다.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을 비롯해 연장근로, 휴일근로에 대한 수당 등의 산정 기준이 된다.

지난 2013년 판결에서 대법원은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는데 이번에 고정성 요건을 아예 폐기한 것이다.

기존 판례는 별도의 조건을 충족해야 지급하는 임금은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에서 제외했지만, 이번에 종전 판례가 뒤집히면서 앞으로 정기적인 근로에 따른 대가는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고정성 개념이 통상임금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해 연장 및 야간 근무에 상응하는 근로기준법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짚었다. 통상임금이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억제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정책 목표에 부합해야 하지만 고정성 개념은 오히려 연장근로 등을 억제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재계는 “기업들이 재무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라며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손경식)은 입장문을 내고 “이번 판결은 지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재직자, 최소근무일수 조건이 있으면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전면 뒤집은 것”이라며 “통상임금 범위를 대폭 확대시킨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의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내수부진과 수출증가세 감소 등으로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판결로 예기치 못한 재무적 부담까지 떠안게 돼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정기상여금을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에는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우선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정기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시킬 부분과 성과를 반영한 성과급으로 재편성해서 현재의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조건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매우 커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챗 GPT 활용 제작]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도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섞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대내외 불확실한 경영 여건과 맞물려 (이번 판결이)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이번 판결을 계기로 연공서열 중심의 우리나라 임금체계를 직무급으로 바꾸는 근본적인 개선방안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도 “지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래로 정립해 온 통상임금 법리의 변경은 우리나라 노사 관계에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정부와 기업, 노조는 본 판결의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임금체계 개편 등 노사관계 안정과 협력을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도 한목소리로 “대내외 불확실성 증가 등 위기 상황에서 기업들의 추가적인 비용 부담과 노사 간의 갈등이 증가할 수 있고 고용감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들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기존의 대법원 판결 하에 노사 합의로 통상임금 범위를 정한 기업 입장에서는 앞으로 줄소송에 시달리는 동시에 천문학적인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하게 된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연일 환율이 치솟고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는 등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이번 판결이 경제적 부담은 물론 노사 간 갈등만 부추기는 기폭제가 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경총이 최근 발표한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시 경제적 비용과 파급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통상임금 산입 여부에 영향을 받는 기업은 회원사 전체 기업의 26.7%로, 이들 기업은 1년치 당기순이익의 14.7%를 추가 인건비로 부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정기상여금 비중이 높고, 초과근로가 많은 대기업 근로자에게 임금 증가 혜택이 집중되는 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총에 따르면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으로 29인 이하 사업장과 30∼299인 사업장 근로자의 월 임금 총액 격차는 혜택을 받는 근로자를 기준으로 기존 월 107만1000원에서 120만2000원으로 13만1000원 확대된다.

29인 이하 사업장과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와의 월 임금 총액 격차도 기존 월 321만9000원에서 351만7000원으로 29만8000원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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