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과 불법이민자 추방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고물가가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의 친시장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휩싸여 있다”고 22일(현지시간) ㅁ보도했다.

이노베이터 캐피털매니지먼트의 팀 우르바노비츠 수석 투자전략가는 “끈적끈적한 인플레이션 위에 관세가 부과되면 소비자에 대한 세금으로 작용해 경제 성장에 부담을 주고 경제를 둔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최근 글로벌 펀드 매니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미국이 내년에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의 알베르토 무살렘 총재도 최근 뉴욕 이코노믹 클럽 연설에서 미국이 인플레이션 상승과 스태그플레이션(침체+고물가)이라는 두 가지 위험에 직면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무살렘 총재는 데이터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상승하며 연준의 통화정책을 더 경기제약적 경로로 이끌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인들이 기대하는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서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이 아니라 ‘인상’해야 할 처지에 연준이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무살렘 총재는 “현재 환경은 인플레이션이 (2%) 목표를 하회하는 경우보다 리스크가 더 높다”며 “특히 기대 인플레이션이 고정되지 않았을 수 있을 위험이 더 크다”고 평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마트에서 사람들이 식료품을 사고 있다. [EPA]

실제 미국의 1월 물가 상승률은 3.0%(전년 대비)로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인플레 풍향계로 여겨지는 월마트는 올 회계연도 매출을 3~4%, 영업이익은 3.5~4.5% 증가할 것이라며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수치를 내놓기도 했다. 70%가 소비로 이뤄져 있는 미국 경제에서 월마트의 이 같은 예상은 ‘소비 엔진’이 식을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제품 전체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으며 멕시코 및 캐나다산 수입품에도 25% 관세를 발표했다가 한 달 연기한 바 있다. 또한 다음달 12일부터 모든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4월부터는 전세계에 상호관세를 도입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지난 8일에는 수입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할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2022년에도 인플레이션이 급등하고 주식 및 채권 가격이 폭락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나왔으나 결국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경제성장이 유지됐기 떄문이다.

월가 대형 투자자문사 에버코어 ISI는 최근 보고서에서 새로운 경제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전망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마크 잔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이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잔디 이코노미스트는 “관세와 불법 이민자 추방은 인플레이션과 성장 저해의 원인이며, 둘 다 부정적인 공급 충격(상품이나 서비스의 공급이 갑자기 줄어들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초래한다”며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원인 중 하나는 오일 쇼크(원유 가격 급등)과 같은 부정적인 공급 충격이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는 2년 만기 국채를 매도하고 저성장 시나리오에서 더 유리할 10년 만기 국채를 매수할 수 있다고 잔디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금값은 올 들어서만 10번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매튜 바르톨리니 SPDR 아메리카 리서치 책임자는 “이는 일부 투자자들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