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차주영, “재미 없는 주연보다 재밌는 조연을 더 좋아한다”(인터뷰)

차주영

“왕과의 정사(情事)도 원경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장면이 아닐까”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저였다면 원경왕후와 비슷한 면이 있다.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후궁을 들인다고. 나는 이 남자밖에 없는데.”

티빙·tvN 드라마 ‘원경’에서 왕조사회임에도 주체적인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준 중전 원경왕후를 연기한 배우 차주영의 말이다.

차주영은 ‘원경’ 촬영중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한다. 친할머니는 원경과 같은 ‘성’(姓)인 민씨라고 한다.

“원경왕후 같은 상황이라도 저희 할머니는 견뎌내실 거라고 생각한다. 현명하고 책임감이 있다. 내가 선택한 것, 내가 선택해 파생된 것에 책임을 져야 된다고 하셨을 분이다. 그 선택을 져버리는 것은 나를 버리는 느낌이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차주영은 원경의 10대부터 죽는 날까지의 일대기를 무게감 있게 연기했다. 때로는 단호함을 보여주었고 때로는 절절한 상황을 폭넓은 감정연기로 소화해냈다.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었나

▶제가 원경 역할이 최초는 아니다. 최명길, 박진희 선배님들이 하신 걸 보기는 했다. 하지만 제 것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강력한 여장부보다는 부드러운 여성, 전면에 드러나는 킹메이커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내조를 발휘하는 인물로, 또 여자로 보이고 싶었다. 나만의 원경을 채워보고 싶었다.

원경

-원경은 극중 승은을 입은 채령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 널 취한 사람의 잘못이다. 그런 잠자리라면 승은을 내려주셨다고 해서 기뻐할 일이 아니다. 널 업신여겼다. 노여워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한다. 왕조국가에서 중전이 이렇게 제대로 된 성인지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니 놀랍다.

▶저는 그 대사가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그리고 재촬영을 했다. 처음에는 차분하고 슬픔에 빠져 대사를 했는데, 그후 입장은 방원에 대한 분노가 커진 것이고, 다시 하니 달관하는 모습도 있었던 것 같다.

-원경의 대사톤은 어떻게 만들었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저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사극은 이렇게 해야지, 말투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다. 대본을 보고 다듬어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처음에는 따라하려고 했다. 아쉬운 부분도 생겼다. 더 강단있게 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가 왕비를 알아’라는 소리를 듣고 갭이 많이 느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어떻게 ‘원경’의 타이틀 롤을 맡게됐나?

▶누구의 일생을 담는 작품에서 주연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무조건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저는 분량 욕심도 없고, 재미 없는 주연보다 재밌는 조연을 더 좋아한다. 타이틀 롤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막상 해보니, 좋은 시기에 이런 것 한번 해보면 됐다고 생각한다.

원경

-19禁 OTT용 제작의 노출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더 글로리’때도 고민이 없었다. 이번에는 왕실의 침실을 다루는 것은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실존인물이라 죄송스런 마음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득될지 모르는 부분도 있다. 촬영은 침실 장면 분위기 정도만 알고 들어갔다. 왕과의 정사(情事)도 여성(원경)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장면이 아닐까. 하지만 왕조국가라 해도 사적인 잠자리까지 많은 눈과 귀가 있는 곳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 자체는 반대다.

-원경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연기 색깔을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았나

▶완고(完稿)를 보고 촬영에 들어간 게 아니다. 원경의 아들딸이 이렇게 많이 바뀔줄 몰랐다. 프리퀼 부분은 원경의 아역을 고민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하겠다고 우겼다. 결국 노년까지 한 사람이 연기한 거다. 나이듦의 연기, 지쳐가고 시들어가면서 마음속 화병에서 학질이 생겼음을 본인 스스로 알아챈다. 힘이 점점 달릴 거라는 느낌으로 연기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분장사 등 전문가들에게 맡겼다. 중전인 원경의 위용을 보여주는 가채가 무거워 촬영하고 나니 목디스크가 생겼을 정도다.

차주영

-원경과 태종 이방원과의 관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신의, 의리로 맺어진 운명의 배필이다. 거부해도 소용 없다. 방원이 없으면 원경도 없고, 원경이 없으면 방원도 없다. 너무 힘든 사랑이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랑, 숭고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랑이니까. 내(원경)가 먼저 키스하고, 어떤 면에서는 멜로로 접근했다. 역사를 무시하면 안되지만 사랑이야기로 접근, 멜로에 가깝다.

-원경의 일대기를 연기한 입장에서, 원경이라는 인물을 다시 한번 말해본다면.

▶나도 원경처럼 여말선초여자 같다. 보수적이면서도 자유롭기도 하다. 나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일을 저지른다. 저만이 감당할 수 있을 근자감 같은 게 있다. 원경의 선택에서도 그런 점이 묻어나 있더라. 소중했기에 끝까지 감당하고 싶었다. 자기가 선택한 것에 책임 지는 것, 핑계 대지 않는 것이 원경의 특징이다.

-기록에 없는 원경의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나갔는가?

▶실제 역사적 인물이라 작품을 만드는데 조심을 해야 했다. 큰 줄기는 건드릴 수 없다. 하지만 원경 관점에서 풀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프리퀄인 단오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원경왕후가 원더우먼이야”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방원에게 죄송한 마음도 든다. 원경이 주인공이고 여성서사다 보니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데, 그것에 너무 고민하면 안된다. 모험하지고 모였는데, 드라마적인 허용은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태종 이방원보다 저(원경)를 배려한 부분이 더 많음을 알고 있다.

원경

-원경이 묻혀있는 헌릉을 가봤나?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헌릉을 두 번 갔다. 외할머니 산소도 갔다. 죄송스런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잘 지켜봐주세요. 누가 되지 않게 만들어보겠어요, 저 할머니, 조상 덕 많이 보고 있어요. 잘 지켜봐줘서 잘 끝났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애쓴 작품이다. 모든 스태프가 진심이었다.

-좋은 촬영지를 많이 다녔던 것 같다. 인상적인 장소가 있는가

▶문제는 말 타는 장면 30분 찍기 위해 3시간을 이동한다. 그리고 다음 촬영지로 간다. 해가 지면 못찍고. 감독님의 헌팅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 가운데에도 경남 하동군의 기운이 너무 좋았다.

-‘원경’을 통해 얻은 것은?

▶‘더 글로리’를 통해 인지도를 얻었고, ‘원경’을 통해 제 이야기를 오해 없이 들어주시는 것을 얻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것. 이번 모험이 틀리지 않았다. 조금 괜찮은 영향을 미쳤다면 저는 행복하게 느낄 것이다. 큰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차주영

-경영학과 출신으로 배우를 하고 있는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아니었고, 배우의 인물, 그 시대를 살아가고 싶다. ‘타이타닉’을 봐도 그랬다. 어릴 때, TV를 안봤다. 영화는 찾아봤다. 경영학과를 졸업할 때, 배우를 하면 체험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만, 문외한이라 방법을 몰랐다.

내가 모르는 세상을 덤벼보고싶었다. 배우가 괜찮은 직업이겠다고 제 인생을 베팅했다. 제안을 해준 회사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회사와 계약한 것도 아니었다. 금융회사에 가고싶었는데, 금융과 엔터를 같이 하는 회사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어 데뷔하게 됐다.

하지만 ‘더 글로리’때만도 부모가 조금 반대했다. 이번에는 많이 좋아하셨다. 부모님은 할머니 생각하면서 봤을 것이다. 우리 집은 TV를 보는 습관이 없는데, TV 다큐, 대하사극은 본다. 내가 하는 사극을 보고싶었을 것이다. 저도 이제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나가도 사람들이 알아보시더라.

차주영

-차기작과 하고싶은 작품은?

▶주지훈과 차기작 ‘클라이맥스’를 함께 찍는다. 인물들이 매력적이다. 앞으로 하고싶은 역할은 지극히 평범한 역할이다. 조성모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느와르 장르도 좋아하고 여군 역할도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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