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제가 전화를 딱 받으니까 벌써 약간의 식사와 반주를 한 느낌. 제가 원장님 부재 중이니까 원을 잘 챙기라고 얘기하고…”(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10차 변론)
지난달 4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첫번째 증인신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이 책상을 ‘쿵쿵’ 내려치며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12·3 비상계엄 당일 밤 8시 22분 홍 전 차장과의 짧은 통화로 그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고 자신있게 말 합니다.
탄핵 심판정에 선 윤 대통령은 거침 없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은 대국민 호소용 계엄이었고, 정치인 체포 지시와 국회 방해는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끝까지 주장했습니다.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 심판에 직접 출석한 대통령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당당한 모습이었습니다.
탄핵 심판정에 선 윤 대통령은 어떤 말을 했을까요? 윤 대통령의 발언 전략을 2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봤습니다. ‘확신’과 ‘상식’입니다. 먼저 확신의 언어입니다.
![]() |
12·3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4일 새벽 국회 관계자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 들어가고 있다. [이상섭 기자] |
첫 번째 키워드는 확신입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지는 일은 주로 대리인단이 맡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증인신문이 끝난 후 ‘총평’을 하며 12·3 비상계엄 당일 벌어진 일들이 모두 본인이 예상한 범주에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처음 출석한 3차 변론기일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3차 변론기일(25.01.21)
12월 3일~4일 밤에 내려진 의결을 군을 투입해서 방해했다고 한다면, 그럼 그걸로 이제 더 이상 계엄 해제 요구를 못 하고 계엄이 쭉 그냥 가는 것이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와 언론은 대통령보다 훨씬 강한 ‘초갑(甲)’입니다. (중략) 당시에 막거나 연기한다고 해서 그게 막아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국회가 재빠르게 계엄 해제를 의결할 것을 예상했다는 주장입니다. 12·3 비상계엄은 빨리 끝났습니다. 12월 3일 밤 10시 29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다음날인 새벽 1시 3분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결의했습니다. 오전 4시 30분께 국무회의를 열어 계엄령 해제 안건을 승인했습니다. 계엄이 유지된 시간은 361분이었습니다.
이는 ‘대국민 호소용’ 비상계엄이었다는 논리로 이어집니다. 비상계엄이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독재로 가는 비상계엄을 계획한 적 없다는 겁니다. 비상계엄은 야당 주도 국회의 폭거, 안보 위기 상황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주장입니다.
또 군인들의 저항도 예상했다고 말합니다. 비상계엄 아래에서도 ‘부당한 지시’를 내린다면 군인들이 항명할 것이 분명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을 무리하게 끌어내거나 저항하는 시민들을 진압하라는 지시도 내린 적이 없다는 겁니다.
4차 변론기일(25.01.23)
소추인 측이 (중략) 군인들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나 우리 장관이나 군 지휘관이나 다 우리 지금 실무급의 영관급이나 지휘관급 장교들이 다 정치적 소신이 다양하고. 어떤 반민주적이고 부당한 일을 지시한다고 할 때 그거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저희도 다 알고 있고…
![]() |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10차 변론에서 증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
확신의 언어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증인들을 대상으로 쏟아졌습니다. 특히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증인신문이 클라이맥스입니다. 홍 전 차장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방첩사를 지원해 싹 다 잡아들여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어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의 통화에서 구체적인 명단을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국정원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지시를 내릴 이유가 전혀 없다고 강조합니다.
10차 변론기일(25.02.20)
계엄과 관련된 정보 사항을 파악해야 되겠다면 대통령이 국정원장한테 전화를 하지 차장한테 전화한다는 것은 이것은 공직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난번 국정원장 어디 경찰조사 때도 대통령께서 “국정원 직제를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수사관이 조서를 받은 모양인데 전부 엉터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국정원 직원 빼고 저만큼 국정원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 없습니다. 저는 국정원 수사를 3년 했고요. 그리고 국정원, 방첩사, 경찰의 대북역량을 보강하기 위해 취임 이후에도 엄청나게 노력했을 뿐 아니라 국정원 인사를 벌써 여러 차례 해온 사람이라 속속들이 저는 잘 압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확신의 언어는 때에 따라 변하기도 했습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국정원이 위치 추적이 가능하냐’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에 관한 부분입니다. 5차 변론기일에서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끝난 이후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방첩사령관이 모를 리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10차 변론기일에서는 여 전 사령관이 “몰라서 한 일”이라고 말을 바꿉니다. 상반되는 진술이지만 이를 말하는 윤 대통령의 태도는 확신에 가득 차 있습니다.
5차 변론기일(25.02.04)
지금 뭐 검거니 위치 추적이 이렇게 하는데요. 국정원은 수사권이 없고 검거는 커녕 위치추적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협력해서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방첩사령관이 모를 리가 없고. 저 자체는 말이 안 된다고 보고 있고요.
10차 변론기일(25.02.20)
수사나 이런 거에 대해 특히 여인형 사령관은 순 작전통이고 해가지고, 도대체 수사에 대한 개념 체계가 없다보니. 위치 확인을 좀 동향 파악을 하기 위해서 (경찰과 국정원에 위치 추적 요청을) 했는데. 경찰에서 그것은 현재 사용하는 휴대폰을 알지 않는 한 어렵다고 딱 잘랐다고 이야기를 해서…
이제 헌재의 시간입니다. 헌법재판관들은 평의와 평결을 거친 후 결정문 작성에 들어갑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전례에 비춰보면 이르면 다음 주, 늦어도 3월 중순에는 윤 대통령 탄핵 여부가 결정됩니다.
헌법재판관들은, 아니 국민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의 계엄을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