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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고객은 단일한 소비자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라이프스타일 또한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한 명의 고객이 아침에는 실용적인 스니커즈를, 오후에는 기능성 러닝화를, 저녁에는 감성적인 플랫슈즈를 찾는다. 패션 브랜드는 이제 ‘누구에게 파는가’보다 ‘언제, 어떤 상황에, 어떻게 선택되는가’를 고민하고 설계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수요 기반 성장 전략(Demand Centric Growth·DCG)’은 패션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과정의 성공을 위한 전략적 가이드가 될 수 있다. 고객을 단순하게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순간에서 수요를 디코딩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 첫 단계로 ‘디맨드맵(Demand Map)’을 통해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감정적·기능적 니즈, 구매 맥락 등을 유형화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국의 친환경 신발 브랜드 로시스(Rothy’s)는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한 니트 플랫슈즈와 ‘지속 가능성’이라는 메시지로 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고객의 세분화된 니즈에 직면하며 성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로시스는 DCG 전략을 도입해 ‘고객 한 명’이 아닌 ‘다양한 상황 속 고객’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고객의 구매 목적, 감정적 욕구, 라이프스타일을 기준으로 11개의 수요 유형을 정리했다. 그리고 유형별 타깃 정의, 핵심 메시지, 주요 마케팅 채널까지 도출했다. 이 가운데 ‘편안함 중시형(Comfort Seeker)’을 예로 들면, 이 유형은 장시간 착용에도 편안함을 중시하는 소비자들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이들을 위한 전략은 ‘하루 종일 편안한 발’을 핵심으로 삼아 검색광고와 리뷰에 집중하는 식이다. 로시스는 이 유형 분석을 토대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기술력과 기능성 중심으로 성장한 프리미엄 퍼포먼스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Arc’teryx)는 중국 시장에서 급성장과 함께 감성적·럭셔리 브랜드로 인식되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 이에 아크테릭스도 DCG 전략을 도입해 고객의 감성적·기능적 니즈를 중심으로 디맨드맵을 재정의했다. 이들은 ‘착용 목적’, ‘활동 강도’, ‘도심 vs 자연’, ‘자아 표현 방식’, ‘소재/디자인 민감도’ 등을 기준으로 브랜드가 공략할 수요를 선별했다. 특히 두 가지 핵심 수요 공간, ‘기능성과 스타일을 모두 중시하는 도심 소비자(Urban Performer)’와 ‘디자인과 감성을 중시하는 소비자(Style-Conscious Explorer)’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테크 기반 디자인, 미니멀 감성, 협업 컬렉션, 브랜드 스토리 중심 콘텐츠와 브랜드의 감정적 연결을 강화했다.
패션 브랜드가 직면한 본질적 질문은 바뀌었다. ‘이 제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아니라 ‘고객의 어떤 순간에 선택될 것인가?’이다. DCG는 고객을 분류하는 도구가 아니다. 브랜드가 고객의 삶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기 위한 지도다. 국내 패션 산업 역시 연령, 성별 같은 전통적 세분화를 넘어 고객의 상황과 감정, 그리고 순간의 니즈를 읽는 방식으로 전략을 재정렬해야 한다. 제품, 메시지, 채널을 수요 공간에 따라 일관되게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필요한 성장 공식이다.
안태희 BCG코리아 MD 파트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