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1만여점…한국 근현대미술사 조망
‘이건희 컬렉션’ 더해 한국 근대작 질적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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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소장품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 전시에 소개된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 작품.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다. [국립현대미술관] |
[헤럴드경제(과천·서울)=이정아 기자] 지난 3년에 걸친 지역 순회 전시를 마친 ‘이건희 컬렉션’이 마침내 국립현대미술관에 자리를 틀었다. 55년 전에만 해도 ‘0점’으로 출발했던 미술관의 소장품 수는 이 컬렉션(1400여 점)이 대거 들어오면서 1만1800여 점으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명실상부한 미술관으로 전환했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이처럼 자신하며 말하는 데는 무엇보다 근현대 미술의 굵직한 흐름을 아우르는 명작이 대거 수혈되면서 양적·질적으로 미술관의 면모가 달라지고 있어서다.
그 변화의 서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관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장품전을 서울관과 과천관에서 동시에 펼친다. 각각 1년, 2년여간 열리는 상설전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소장품은 미술관의 뼈대이자 근간”이라며 “이제 소장품만으로도 한국미술 100년사와 국제 미술계가 주목하는 동시대 미술의 명목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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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되는 소장품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 전경. 강익중의 ‘삼라만상’(1984-2014)과 김수자의 ‘보따리 트럭-이민자들’(2007)이 전시된 모습.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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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소장품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 전시 전경. [연합] |
개관 이래 처음으로 상설전을 선보이는 서울관에서는 1960년대에서 2010년대를 가로지르는 대표작 90여 점을 선보이는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가 펼쳐진다. 한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83명의 걸작을 한 점씩 소개하는, 그 자체로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를 한자리에 집약한 전시다.
동시에 과천관에서는 한국 20세기 미술사를 장대한 호흡으로 바라보는 ‘한국근현대미술’ 전시가 두 차례에 걸쳐 열린다. ‘한국근현대미술 I’에서는 1900~1960년대 작가 70명의 작품이 근대미술의 궤적을 그려낸다. 내달 26일에 이어지는 ‘한국근현대미술 II’에서는 1960~2000년대를 아우르는 현대미술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상설전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 측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지난 2021년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에서 엄선된 주요 작품 51점(서울관 9점·과천관 42점)도 포함됐다.
김 학예실장은 “서울관이 핵심을 보는 응축된 전시라면, 과천관은 보다 심화 학습을 할 수 있는 전시”라며 “관람객이 찾는 유명하고 익숙한 명작부터 조금은 덜 알려졌지만 꼭 봤으면 하는 작품까지 균형 있게 구성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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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되는 소장품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 전경. 전시장 도입부에 김환기 ‘산울림 10-Ⅴ-73 #314’(1973)이 전시돼 있다. 이 전시는 이건희 컬렉션 9점을 포함한 한국 현대미술 대표작 86점을 소개한다. [연합] |
우선 서울관에서 진행되는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는 추상, 실험, 형상, 혼성, 개념, 다큐멘터리 등 6개 소주제로 엮였다. 작품 비중 면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는 섹션은 추상이다. 전시장 도입부에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의 점묘화 ‘산울림 19-II-73#307’(1973)이 관람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좌우에는 이건희 컬렉션인 최욱경의 ‘미처 못 끝낸 이야기’(1977)와 유영국의 ‘작품’(1965)이 고요히 응시하듯 걸렸다. 전시는 그렇게 말보다 먼저 마음에 스며드는 첫인상을 남긴다.
혼성 섹션에는 백남준, 강익중, 김수자, 서도호의 설치와 영상 작품이 마주보고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열됐다. 그중 백남준이 1995년 독일 볼프스부르크 미술관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잡동사니벽’(1995)과 김수자의 ‘보따리 트럭-이민자들’(2007)은 미술관이 소장한 이후 처음으로 공개하는 작품이다. 13m에 이르는 벽면을 채운 가로, 세로 각 3인치(7.6㎝) 크기의 각기 다른 초소형 그림 8500여 점이 거대한 화면을 이루는 강익중의 ‘삼라만상’(1984-2014)은 그 자체로 무수한 의미의 교차점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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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소장품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 전시 전경. 오지호의 ‘남향집’(1939) 작품이 전시돼 있다. [연합] |
과천관에서는 대한제국을 거쳐 개화기, 일제 강점기, 광복, 한국전쟁까지 격동하는 20세기 전반의 근대 작품 145점을 연대별로 살펴볼 수 있다. 현미경, 망원경, 카메라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사실적인 관찰에 입각한 묘사가 두드러지는 회화가 서화의 전통을 탈바꿈했고, 이어 ‘미술’과 ‘미술가’라는 낯선 개념이 우리 사회에 서서히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남긴 복잡다단한 사회 상황 속에서 전후 예술은 다채로운 양상으로 전개됐다.
단조로운 시대 구분을 넘어 급변하는 역사와 그에 맞서 탄생한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부터 조형 실험에 이르기까지 시각예술의 진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미술품 460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작품 42점이 이번 전시에 대거 포함돼 한 시대의 미감과 정서를 생생히 되짚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국 인상주의 선구자 오지호, 부부 작가 우향 박래현과 운보 김기창,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이자 비운의 삶을 살았던 천재 화가 이중섭 등을 각각 집중 조명하는 ‘작가의 방’도 배치됐다. 미술사의 흐름에 따라 각 작가의 방이 전시 속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낸 점이 눈에 띈다. 작가의 방에서는 1년 단위로 새로운 작가가 소개될 예정이다.
한편 상설전 전시 작품은 해외 순회 일정 등에 따라 일부 교체될 예정이다. 소장품을 한층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 감상 프로그램과 강연도 잇따라 진행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