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러시아 ‘발레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 별세

유리 그리고로비치와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국립발레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러시아의 ‘발레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별세했다. 향년 98세.

20일 타스 통신을 비롯한 러시아 매체들에 따르면 러시아 볼쇼이극장 예술감독을 지낸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세상을 떠났다. 영결식과 장례식 날짜와 장소는 추후 발표될 예정이다.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러시아의 양대 발레 극장인 마린스키 극장의 무용수이자 안무가, 볼쇼이극장의 수석 안무가, 예술감독을 지낸 20세기 최고의 안무가 중 한 명이다.

1927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고인은 레닌그라드 발레학교를 졸업, 1946년 키로프 아카데미 오페라 발레 극장(현 마린스키 극장) 발레단에 입단해 1961년까지 무용수로 활동했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진 마린스키의 안무가로 발레단을 이끌었다.

이후 30년은 볼쇼이극장과 함께 한 시기다. 1964년부터 1995년까지 30년여간 볼쇼이극장의 수석 안무가를 맡았고, 1988년부터는 예술감독을 지냈다.

그의 손끝에서 무수히 많은 안무작이 태어났다. 첫 안무작은 ‘석화’. 데뷔작부터 ‘천재적 안무가’의 탄생을 예고한 고인은 1961년 두 번째 안무작인 ‘사랑의 전설’을 통해 이듬해부터 마린스키 발레단의 ‘발레마스터’를 역임했다. 이후 그는 러시아 발레의 새로운 경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유리 그리고로비치 [국립발레단 제공]


이후 ‘이반 뇌제’, ‘호두까기 인형’, ‘스파르타쿠스’, ‘로미오와 줄리엣’,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의 작품을 연출, 그는 볼쇼이극장을 세계 최정상으로 끌어올리며 ‘발레는 곧 볼쇼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1995년 경영진과 불화로 그리고로비치가 볼쇼이극장을 떠날 때 극장에선 200여년 역사상 최초로 무용수 파업이 벌어졌다.

이후 크라스노다르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발레극장의 예술감독을 지내다가 2008년 볼쇼이로 돌아와 올해까지 안무가 겸 발레 연출가로 활동했다.

1973년 소련 인민예술가로 선정됐고 1986년에는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는 등 러시아 안팎에서 60개 이상의 상을 받았다.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한국의 발레 관객에게도 잘 알려져있다. 고인이 예술감독으로 있던 1988년 볼쇼이발레단과 첫 내한공연을 가졌고, 최태지 전 단장 재임 시절 국립발레단과 인연을 맺은 이후 그의 많은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유리 그리고로비치 [국립발레단 제공]


최 전 단장은 1997년경부터 고인에게 작품을 요청했지만, 당시는 국립단체가 해외 안무가와의 작업이 허락되지 않았다.

최 전 단장은 헤럴드경제에 “2000년 국립발레단이 재단법인으로 바뀐 이후 ‘호두까기 인형’을 시작으로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를 무대에 올렸다”고 말했다. 이후 ‘로미오와 줄리엣’, ‘라 바야데르’ 등 총 6편의 작품을 함께 했고, 세계적인 거장은 한국의 국립발레단과 함께 공연하면서도 일체의 저작권료도 받지 않았다.

최 전 단장은 “유리는 초창기 세 작품을 올리는 기간동안 발레리나 출신인 부인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1941~2008)와 함께 서울에 머물며 연습실로 출근해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을 직접 가르쳤다”며 “‘스파르타쿠스’를 할 때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유리와 6개의 레퍼토리를 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라며 “유리와 함께 하며 국립발레단은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거장의 별세에 국립발레단도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추모의 글을 남겼다. 국립발레단은 “그분의 안무 속에서 감정을 배웠고 진정한 무용수를 꿈꿨다”며 “숭고한 예술혼과 따뜻한 가르침은 모두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살아 있을 것”이라는 글로 추모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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