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각서도 러시아 주도로”…푸틴에 말려드는 트럼프

푸틴 평화각서 제안, 휴전협상 전 ‘시간벌기’
“우크라, 협상 거부하면 무조건 항복뿐” 압박도


지난 2월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신문 가판대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화 통화를 다룬 일간지가 놓여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19일(현지시간) 전화 통화를 하면서 우크라이나에 휴전 문제를 포함한 평화 각서를 제안할 것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말려들고 있는 형국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21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푸틴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나서는 유럽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며 러시아의 뜻대로 전황이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세가와 유키 방위연구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과 통화 전엔 자신이 중재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회담 후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협상 문제로 보면서 미국이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짚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마친 후 소치에 있는 시리우스 교육 센터에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AFP]


또 푸틴이 제안한 평화협정 각서와 관련, 하세가와 연구원은 “푸틴이 휴전도 하지 않고 각서 작성을 하게 되면, 러시아 주도로 협상이 진행되고 이를 미국이 뒷받침하는 구도가 될 수 있다”며 “트럼프가 푸틴에 말려들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이 제안했던 30일 전면 휴전에 동의하며 러시아가 이를 수용할 수 있도록 트럼프가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며 “그러나 회담 후 트럼프에게서는 그 얘기가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트럼프는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기대감을 내비쳤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 후 러시아의 기세가 등등해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평화 각서를 제안하면서 답변하라고 압박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이제 키이우(우크라이나) 차례다.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국가를 보존하기 위해 ‘건설적’ 입장을 취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가 시간을 벌려는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젤렌스키는 푸틴에게 30일간의 휴전을 받아들이고 직접 정상회담에 나설 것을 요구해왔지만, 푸틴 대통령은 이에 응하지 않고 각서를 체결하자고 역제안한 셈이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도 러시아가 각서 제안으로 새로운 시간을 확보했다며 “기한이 정해지지도 않은 채 미래에 가능한 각서의 원칙들이 정해질 때까지 협상이 계속될 것이며 러시아는 이 시간을 원하는 대로 활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이날 “각서에 관한 구상이 공식화됐지만, 문제에 대한 충분한 내용이 담긴 각서가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각서는) 미래를 위한 견고한 토대를 마련할 내용, 항구적인 평화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이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수차례 협상을 제안해왔다”며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에는 다른 길도 있다. 그것은 무조건 항복의 길”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포기 등 러시아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남은 선택지는 무조건 항복뿐이라는 압박 발언으로 해석된다.

아사히는 러시아가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데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승인’을 받았다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푸틴과의 전화 통화 후,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조건에 대해 “양측 당사자 간의 협상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소셜미디어(SNS)에 밝히며, 미국이 깊게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또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가 요구하는 대러시아 제재에 대해서도 “사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미국의 확실한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러시아는 더욱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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