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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용시장은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몹시 가혹하다. 올 상반기 대기업의 절반 이상은 신규 채용 계획이 없었고, 공기업들의 채용 규모도 5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를 의미하는 구인 배수는 0.37로 1998년 외환위기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졸업을 미루는데도 첫 일자리를 얻는 데 걸리는 기간이 1년이 넘는다. 이마저도 임시·일용직 비중이 34.4%, 시간제 비중이 18.7%다. 구직활동을 포기하고 그냥 쉰다는 청년은 해마다 늘어 60만 명에 이른다.
‘요즘 애들 눈만 높아져서’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노동시장을 ‘12대 88’로 동강 내 진입장벽을 쳐놓고 그 보호막 속에 있는 기성세대가 할 소리는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과 근로조건은 천양지차가 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정책이 대기업 근로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흐르면서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노동시장 간의 장벽은 더욱 두꺼워졌고 격차는 빠르게 벌어졌다. 노동법제가 대기업에서는 지켜지는 편이나 중소기업에서는 그런 형편이 아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이나 플랫폼 노동현장은 아예 법 적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선 정부가 선의로 내놓은 정책도 대다수 노동자와 구직자에게 상실감과 좌절감을 줄 수 있다. 정년 연장이 그렇다. 대기업 정규직에 정년 연장은 동아줄이다. 퇴직해 나가면 바로 낭떠러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정년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청년들의 취업 문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늘 낭떠러지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된다.
현 상황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일한 만큼 보상받아야” 한다는 말은 위선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깨지지 않고서는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공정과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려면 ‘12대 88 구조’만큼은 미래세대에 결코 넘겨서는 안 된다. 이중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필요하면 노조법 2·3조와 노동유연성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이 문제야말로 연대와 타협이 필요한 만큼 향후 사회적 대화에서 최우선 의제로 다룰 필요가 있다.
지난 사회적 대화를 돌아보면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를 빼고는 제대로 된 성과를 찾기 어렵다. 그때는 양대 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구조조정과 대량 실업이라는 위기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절박함이 사회적 대타협을 이뤘다. 지금 동아줄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은 노동시장의 88%를 차지하는 청년, 비정규직, 중소기업이다. 노사 대표가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대화의 의미가 없다.
대화 참여자들은 존 롤스가 말하는 ‘원초적 입장’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어떤지를 몰라야만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놓일 가능성을 고려하여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원칙들에 합의할 것이다. 12%가 독점하는 논의 구조에서는 이런 원칙들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적 대화에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