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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소용 랩은 폴리염화비닐(PVC) 포장재를 사용하는 곳이 많다. 육성연 기자 |
[헤럴드경제=육성연 기자] “착착~붙지를 않네”
20대 박모 씨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은 뒤, 남은 음식을 집에 있던 랩으로 감쌌다. 하지만 중국집에서 붙였던 랩처럼 잘 붙지 않았다. 냉장고에 두자 물방울도 금방 생겼다. 그는 “똑같은 랩인데 왜 다르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경험은 흔하다. 가정용 랩과 업체에서 사용하는 랩이 달라서다. 가정용 랩은 잘 붙지 않고 습기도 찬다. 하지만 더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크다. 집에서 쓰는 랩의 성분을 살펴보면 ‘폴리에틸렌(PE)’이 적혀 있다. 반면 산업용 제품은 폴리염화비닐(PVC) 포장재 랩을 사용하는 곳이 많아 유해성 논란이 있다.
PVC의 주요 원료인 염화비닐(VCM)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인체 발암물질(그룹 1)로 분류한 물질이다. 또 PVC에는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고자 첨가하는 가소제로 프탈레이트계 물질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장기간 노출 시 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호르몬 물질이다. 지난해 10월 노동환경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41개 PVC 랩 중 7개에서 디에틸헥실 프탈레이트(DEHP)가 검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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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용 랩 제품의 표시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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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트에 랩 포장된 고기가 진열돼 있다. [연합] |
환경 전문가들은 PVC 랩에 ‘뜨거운’ 음식이나 ‘기름’이 ‘오래’ 닿으면 유해 물질 노출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고민정 GCN녹색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PVC 랩은 지방이 많거나 열, 장시간 접촉 시 가소제가 노출될 수 있어 소비자 건강과 환경에 모두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PVC 포장재는 재활용도 어렵다. 폐기물을 소각해 열에너지를 얻는 ‘열적 재활용’에도 사용하지 못한다. 소각할 경우 독성물질인 다이옥신과 부식성이 강한 염화수소가 발생해서다. 일반쓰레기로 버리게 돼 있으나, 이것도 골칫거리다. 소각 과정에서 PVC의 유해물질을 줄이기 위해 여러 번의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가정용 PE랩은 재활용 대상 품목이다.
이런 이유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PVC를 ‘최악의 플라스틱’이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업체가 PVC 랩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능성 때문이다. PVC랩은 내용물에 ‘착착’ 들러붙는 포장 성능이 우수하다. 습기도 차지 않는다. 마트에서 랩으로 포장한 과일과 고기가 습기 없이 신선하게 진열될 수 있는 비결이다.
하지만 PVC 랩은 이미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019년부터 사용을 금지했다. 다만 규제에서 제외한 대상이 적지 않다. ‘상온에서 판매하는 햄·소시지’나 ‘물기가 있는 축·수산용 포장랩’, 그리고 ‘연 매출 10억원 미만인 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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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용 랩은 업소에서 주로 사용하는 랩과 성분이 다르다. [123RF] |
이런 예외 규정으로 PVC 포장재 사용규제가 실효성을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식품업계 관련 통계에 따르면, 연 매출 10억원 미만의 업체는 약 80%에 달한다. 중국집이나 분식점 등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경우, 대부분 PVC 랩을 쓴다는 분석이다. 일반 마트에서도 축산물·어류·과일 등을 PVC 랩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흔하다.
예외 규정이 적용된 곳이 많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곳도 적발된다. 기후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부터 올해 6월까지 PVC 포장재 사용을 이유로 포장재 개선 명령을 받은 업체는 138곳이다.
고민정 사무총장은 “2019년 금지 정책의 예외 조항 때문에 영세 업장과 축·수산물 유통에서 사용이 계속돼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졌다”며 “환경부가 예외 조항을 신속히 정비하고, PVC-프리(PE 등) 대체재로의 전면 전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공공조달과 대형 유통부터 단계적 전환을 의무화하고, 소상공인에겐 교체 비용·기술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비자가 PVC 랩 사용을 줄이려면 음식은 배달 대신 매장에서 먹거나, 가정 식기를 가져가 직접 담아올 수 있다. 가정용 랩과 밀폐용기로 교체하는 것도 방법이다.
고 사무총장은 “마트·정육·수산 코너에서 랩 포장된 육류·과일을 샀다면, 즉시 랩을 벗겨 밀폐용기에 옮겨 보관하고, 포장·배달 주문 시에는 ‘PVC 미사용(PE·종이·재사용 용기)’을 요청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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