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북단 사찰’ 금강산 건봉사…‘조계종 본찰’ 양양 진전사 [정용식의 사찰 기행]

(94) 강원 고성군 건봉사, 양양군 진전사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강원 고성군 건봉사 전경



동해안은 3주째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 달여 전 강릉의 극심한 가뭄으로 재난 사태가 선포돼 많은 사람이 하늘에 기우제를 지낸 것에 대한 답이 이제야 오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예전 같으면 이제 곧 강원도 단풍이 한창일 10월 말인데 설악산 정상은 아직 푸르기만 하니 주민들의 우울감은 더욱 클 것 같다.

남한에도 금강산이 있다. 금강산(1638m)은 북한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강원도 고성까지 걸쳐있고 그곳에 사찰도 있다. 38도선 한참 위에 있는 우리나라 최북단 지역인 고성군은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는 지역이라 그러할 만도 하다.

강원도 고성의 금강산 자락


그곳 금강산 자락에 있다는 건봉사는 6·25 이전에는 북한 영역에 속해 있었고 지금도 민통선 안쪽에 있어 1988년까지는 민간인 출입이 힘들었다고 한다. 건봉사 뒷산이 건봉산(907m)인데 한국전쟁 휴전 직전까지 국군과 공산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건봉산 전투전적지’이기도 해 그곳의 건봉사는 완전히 폐허가 될 수밖에 없었다.

금강산 자락이 고성군 거진읍, 현내면, 수동면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니 거진읍 건봉산도 금강산의 한 봉우리임은 틀림없다. 우리 민족에게는 백두산과 함께 특별한 의미를 갖는 영산이지만 ‘금강산’이라는 이름은 원래 불교 화엄경의 금강(金剛)에서 유래한 것이다. 금강(金剛)은 가장 단단한 돌로서 ‘물러나지 않은 진리를 향한 굳은 마음’을 뜻하는데, 불자들은 금강경, 금강역사(수호신), 금강계단 등으로 자주 듣는 용어이다.

건봉사 대웅전


그래서였는지 금강산의 (북한 지역에 있는) 유전사, 장안사, 신계사, 표훈사를 금강산 4대 사찰이라 하는 등 유명 사찰들이 있었고 남쪽 지역 금강산에도 오래된 고찰인 건봉사와 화암사 등이 있다.

특히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서기520년)때 지어진 천년고찰로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등 9개 말사를 거느렸던 3183칸의 대가람이었다.

건봉사 극락전


조선시대 불보사찰 통도사, 법보사찰 해인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전국 4대 사찰로 꼽혔으나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됐다가 최근에야 일부 복원하고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에 의한 승병 봉기처로도 알려져 있고, 일제 강점기 때는 만해 한용운(1879~1944년)이 독립 정신을 고취한 호국사찰로도 알려져 있다.

건봉사에서 남쪽 방향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 속초를 지나 양양 설악산 자락에는 조계종 종조로 일컫는 도의선사가 창건하고 입적하였고 부도탑도 있어 조계종 본찰이라고 하는 진전사(지)가 있다.

두 사찰 모두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었지만 전란 등으로 전소돼 폐사지로 있다가 현대에 와서 복원된 사찰들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末寺)로 돼 있는 곳이다.

민통선 지역의 천년고찰 건봉사


강원 고성 동해


속초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북쪽 방향 자동차로 40여분 가다 보면 철조망으로 장벽을 친 군부대들이 즐비하게 나온다. ‘김일성 별장’, ‘통일전망대’, ‘DMZ 박물관’, ‘6·25 전쟁 체험전시관’ 등 남북 경계 지역에 있음을 실감하는 이정표들을 바라보고 가다 보면 금강산 건봉사를 만날 수 있다.

가는 길에 망망대해 동해의 높은 파도 소리를 듣고, 울산바위, 신선대 등 설악산의 절경들은 볼 수 있지만 머릿속에 그렸던 금강산 절경은 마주할 수가 없었다.

건봉사가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는 지점 좌측 산자락에 수십 기는 됨직한 거대한 승탑(부도탑)군이 오랜 역사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사명당의 승병기념관 겸 만해 한용운 기념관


건봉사 입구에는 사명대사 기적비(記蹟碑)와 함께 사명당의 승병기념관과 만해 한용운 기념관을 겸한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른 시간이라 들어가 볼 순 없었지만 건봉사가 사명당과 한용운이라는 우리 역사의 걸출한 영웅들과 깊은 인연을 증명하고 있음 직한 기념관 옆에는 만해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 시비와 건봉사 승려 출신 월북 작가 조영출의 ‘칡넝쿨’ 시비가 나란히 있다. 북쪽과 가장 인접한 건봉사의 ‘화해정신’일까.

건봉사 불이문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는 ‘불이문’이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된 절터에 유일하게 살아남아 방문하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건봉사 불이문


1920년에 세워진 불이문 현판은 조선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스승인 해강 김규진이 썼다고 하며 팔작지붕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에는 금강저(金剛杵, 무지와 번뇌를 꿰뚫는 지혜와 결단의 상징) 문양이 새겨 있다.

능파교 신창기비


불이문 옆에는 1707년에 능파교를 축조하고 이를 기록한 ‘능파교 신창기(凌波橋新創記)비’가 있으나 해독할 수가 없다.

건봉사 능파교


건봉사의 또 다른 상징이며 보물로 지정된 능파교(凌波橋)는 다리의 중앙 부분이 반원형 무지개 모양을 한, 폭 3m, 길이 15m 정도의 ‘홍예교’로 대웅전 권역과 극락전 권역을 연결하고 있다.

건봉사 봉서루 앞 십바라밀 석주


능파교를 건너니 2층 누각 앞에 대승불교의 열 가지 수행 방법을 상징화한 십바라밀(十波羅蜜) 도형이 음각된 사각형 석주 2기가 서있다.

염불원의 석가세존 진신 치아사리 친견장


능파교를 건너 2층 누각을 통과하면 대웅전 앞마당에 도달하고 마당 좌측 염불원에는 치아사리 5과를 전시한 ‘석가세존 진신 치아사리 친견장’이 설치돼 있다.

석가세존 진신 치아사리 친견장


누각 2층에서 잠시 능파교와 금강산 자락의 풍광을 바라보며 우중(雨中) 산사의 고즈넉함을 즐겨본다.

건봉사 대웅전


건봉사는 염불만일회(극락왕생을 위해 1만일 동안 계속해서 염불 수행하는 모임)를 최초로 개최해 ‘염불 사찰’로도 알려져 있다. 758년에 발징화상이 건봉사를 중건하고 31인의 승려와 1800명의 재가자가 염불 만일회를 개설한 것이 시원이 돼 1801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속해서 개설했다고 한다.

건봉사 극락전


건봉사는 극락전을 복원하고 1921년 이후 끊어졌던 염불만일회를 100년이 지난 2021년 8월부터 개최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대웅전 뒤 북쪽 2㎞ 정도 떨어진 산마루에는 발징화상과 함께 만일염불이 끝나자 승려 31인이 육신을 버리고 극락왕생해 이들 31인의 유골을 모신 부도탑, 즉 등공대(騰空臺)가 있다고 한다.

등공대 이정표


빗속에 찾아 나섰으나 ‘군부대 승인 후 참배 가능하고 그것도 단체 10인 이상 참배 가능하다’는 이정표를 보고 내려와야만 했다.

건봉사 연화교


인근에 사명대사께서 승병을 훈련하면서 몸을 씻고 마시게 해 각종 질병을 퇴치했다는 장군샘(장군수)도 지척에 있는데 위치를 찾지 못하고 내려와 아쉬움을 더했다.

건봉사의 소나무, 냉천약수 일명 장군샘 안내판


건봉사에서 꼭 봐야 할 곳으로 ‘건봉사의 소나무’와 ‘냉천약수 일명 장군샘’이라는 안내표지판을 보니 더욱 그러했다.

건봉사 소나무


화재와 전쟁으로 초토화 되다시피 했던 건봉사에 300여 년 동안 불길을 피해 한결같이 꼿꼿한 모습으로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멋진 소나무가 극락전 뒤쪽 산등성이에 있다.

건봉사 적멸보궁


건봉사 가장 위쪽에 사명대사가 봉안했다고 알려진 부처님 치아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건봉사 적멸보궁


그곳에는 치아사리 3과를 모신 사리탑과 함께 건봉사에 치아사리를 봉안하게 된 내용을 기록한 석가불치상입탑비(釋迦佛齒相立塔碑)와 세존영아 탑비도 함께 있다.

호국사찰 금강산 건봉사


건봉사 전경


건봉사는 사적기에 따르면 서기 520년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원각사(圓覺寺)’로 창건했고, 그 후 신라 말에 도선 국사가 사찰을 중수하면서 절의 서쪽에 봉황새 모양(鳳形)의 바위가 있다고 해 ‘서봉사(西鳳寺)’로 개칭했다.

1358년(공민왕 7) 무학대사의 스승 나옹화상이 사찰을 중수하고 하늘을 상징하고, 팔괘 중 서쪽과 북쪽 사이를 의미하는 ‘건(乾)’ 자를 사용해 ‘건봉사’라고 개명했다고 한다.

조선 세조가 건봉사를 원당(願堂)으로 삼아서 억불 시대에도 나라의 배려로 절이 계속 커졌으며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건봉사에서 6000여명의 의승병을 일으켰고, 왜군이 통도사에서 훔쳐 간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를 사명대사가 되찾아서 봉안했다고 한다.

부처님 사리가 모셔진 치아사리탑(맨 오른쪽)


부처님의 ‘진신치아(齒牙)사리’는 신라시대에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와서 양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등에 봉안했는데, 임진왜란 때 왜병이 통도사의 사리를 일본으로 가져간 것을 선조 38년(1605년)에 사명대사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되찾아와 이곳 건봉사에 봉안하게 됐다고 한다.

건봉사 적멸보궁 사리탑


부처님의 치아사리는 세계에서 15과뿐인데, 3과가 스리랑카에 있고 12과가 건봉사에 있었는데, 86년에 도굴되었다가 8과만을 되찾았다. 그중 3과를 건봉사 적멸보궁 사리탑에 모시고, 5과는 일반신도들이 친견할 수 있도록 염불원에 금제 사리함을 별도로 만들어 안치하고 있다. 1726년 이러한 내용을 기록한 석가치상탑비(釋迦齒相塔碑)를 세웠고 1799년에 사명대사 기적비(紀績碑)도 세웠다.

건봉사는 안타깝게 1878년의 큰 불로 3183칸이 전소되는 참화를 겪고 개운사·중흥사·봉은사·봉선사·용주사 등에서 시주를 받아 재건해 일본 강점기 무렵에는 642칸이 복구됐고 9개 말사(末寺)를 거느린 31본산의 하나가 됐다.

광복 후 북한 치하에 있었고 이후 6·25 전쟁으로 1920년에 세워진 불이문(不二門)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됐다.

1920년대 건봉사 전경


건봉사는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선생과도 깊은 연이 있다. 한용운 선생은 백담사에서 출가했지만 건봉사에서 수행하고 만해라는 당호를 받았으며 건봉사 역사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건봉사에서 청년 학생들에게 독립 정신을 계몽하는 활동을 펼쳤으며, 만해의 대표 시집 ‘님의 침묵’을 건봉사 봉명학교에서 교재로 삼아 외우기 대회를 열기도 했다.

건봉사 독성각


폐사지로 남아있던 건봉사는 1982년 ‘고성건봉사지(高城乾鳳寺址)’ 발굴 이후 1994년 대웅전, 팔상전, 종각 등을 시작으로 절을 복구하고 있다.

건봉사 산신각


건봉사는 인근 마을 전체가 민통선 내에 있어 민간인 출입이 몇 년 전까진 금지된 곳이지만 지금은 천오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많은 문화유산으로 2023년 국가 사적지로 지정됐다.

조계종 본찰(本刹) 양양 진전사


강원 양양군 진전사


건봉사에서 나와 자동차로 1시간 설악산 신선대와 울산바위 절경을 감상하며 남쪽으로 가다 보니 양양의 진전사를 만났다. 8세기 후반에 통일신라에 선종(개인 수양을 중시하는 불교 종파)을 처음 들여온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당나라 유학 후 고국에 돌아와 선종을 소개했으나, 교종(교리를 중시하는 불교 종파)이 지배하는 분위기에 뜻을 펼치지 못하고 이곳에서 수도하다가 입적했다.

양양 진전사


진전사는 ‘삼국유사’를 쓴 일연(一然)스님이 14살 때 출가했고 고려 시대의 명승인 보조(普照)국사가 득도한 선종 불교의 대본(大本) 사찰(寺刹)이라 한다.

양양 진전사지


그 뒤 절은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2005년 복원한 현대적 사찰이 됐지만 진전사지에는 두 개의 중요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인 ‘진전사지 삼층석탑’(국보)과 도의선사의 묘탑으로 추정되는 ‘도의선사탑’(보물)이 그것이다.

진전사 삼층석탑


진전사를 500여m 앞둔 지점, 우측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진전사지터’로 보이는 넓은 공터에 5m 정도의 멋스러운 ‘삼층석탑’이 덩그러니 홀로 서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천신(天神)이 새겨져 있고 1층 몸돌에는 아름다운 불상이 섬세하게 조각된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석탑이다.

진전사 도의선사탑


진전사 초입 언덕 위의 ‘도의선사탑’은 9세기 중반에 세워진 것으로 한국 석조 승탑의 출발이라고 한다. 3m 높이의 부도탑은 사각형의 2층 기단 위에 8각 탑신석을 쌓았고 그 위 지붕돌 끝부분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살짝 들려 있다. 도의선사탑은 삼층석탑과 함께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에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진전사를 창건한 ‘도의 선사’는 기존 교종 불교의 형식화와 일반 백성들이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깨달음 중심의 새로운 불교 사상을 전파하고자 선종을 도입해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宗祖)가 됐다.

그의 사상은 ‘염거화상’과 ‘보조선사 체징’에게 전해져 9세기(신라 후기)에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가지산문(전남 장흥 보림사)을 열었다.

진전사 적광보전


왕실 중심의 교종(敎宗)불교가 주류를 이루던 신라에 당나라에서 선법(禪法)을 배워 누구든지 스스로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禪宗)사상을 설파해 신라 사회에 사상적 전환을 가져온 것이다.

이후에 선종은 참선과 일상 속 수행, 평등한 깨달음을 강조해 인간 중심적 불교사상을 확산시키며 신라 말 사회적 혼란 속에서 불교의 주류를 형성해 갔다.

진전사에서 바라본 풍경


한국 불교 역사에 의미가 있는 최북단 건봉사와 도의선사가 창건한 진전사를 방문하고 나니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기를 바라는 것이 시비에 적힌 시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건봉사 시비, 만해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건봉사 시비, 만해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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