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지적·사회적 자극
‘뇌 연금’ 쌓아야 노년에 안심
“장 건강해야 뇌 기능도 향상”
![]() |
“치매는 불치병이 아닙니다. 극복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막연한 공포에서 벗어나 이제는 ‘해방’될 때입니다”
치매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묵인희 서울대 의대 교수(62·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장·사진)가 자신의 신간 저서 ‘치매 해방’을 통해 대중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치매는 더 이상 ‘걸리면 끝’인 재앙이 아니라, 조기에 관리하고 예방하면 충분히 통제 가능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2025년 현재 국내 치매 환자는 약 100만 명. 65세 이상 노인의 10%에 달하며, 85세 이상에서는 20% 이상이 치매를 앓는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이 병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17일 서울 종로구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에서 묵 교수를 만나 치매로부터의 ‘해방’ 전략을 들어봤다.
▶뇌 속에 쌓는 연금, ‘인지 예비능’을 키워라=묵 교수가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개념은 ‘인지 예비능(Cognitive Reserve)’이다. 이는 뇌 속에 치매 유발 물질(아밀로이드 플라크 등)이 쌓여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게 버티는 뇌의 힘을 말한다.
묵 교수는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뇌에 100만큼 쌓여 있어도 어떤 사람은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바로 인지 예비능 때문”이라며 “죽지 않은 신경세포들이 활발하게 가지를 뻗어, 죽은 세포의 기능을 대신하며 신경망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능력은 어떻게 키울까. 묵 교수는 “뇌를 끊임없이 자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서, 글쓰기,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등 지적·사회적 자극이 뇌세포를 깨운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시기다. 치매 병리는 증상이 나타나기 20년 전, 즉 40대 중반부터 시작된다.
묵 교수는 “증상이 없는 30~40대부터 미리미리 인지 예비능을 비축해 둬야 노년에 병리가 쌓여도 버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腸)이 건강해야 뇌가 웃는다=묵 교수는 ‘장-뇌 축(Gut-Brain Axis)’ 이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장내 미생물 환경이 뇌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는 “치매에 걸린 쥐의 장내 세균을 정상 세균으로 바꿔주기만 했는데도 뇌의 병변이 사라지고 인지 기능이 좋아지는 것을 확인했다”며 “장과 뇌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묵 교수는 더 나아가 장과 뇌를 직접 연결하는 ‘미주 신경’을 통해 약물을 전달하는 획기적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뇌혈관장벽(BBB)에 막혀 약물 전달이 어려운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다. 이 연구 결과는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소드(Nature Methods)’에 발표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네덜란드 ‘호그백 마을’처럼 공동체 모델 필요”=기술은 발전하고 있지만, 치매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묵 교수는 네덜란드의 ‘호그백 마을’처럼 치매 환자와 일반인이 어울려 사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우리나라에도 ‘치매 안심 마을’ 제도가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집값 떨어진다’며 인증받기를 꺼리는 게 현실”이라며 “지방 소멸 위기 지역에 이런 공동체를 조성해 치매 환자가 고립되지 않고 여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묵 교수는 미국 애리조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UCSD)에서 박사 후 연구자 과정을 거치며 국내외 치매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국내에 알츠하이머병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때 연구에 뛰어들었다. 현재 묵 교수가 이끌고 있는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은 2020년 출범해 진단 표준화(MCD)와 임상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굵직한 성과를 냈다. 후속 연구를 위해 2기 사업단 출범이 절실하다.
묵 교수는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치매는 피할 수 없는 파도가 아니라 우리가 준비한 만큼 막아낼 수 있는 질병”이라며 “두려워 말고 지금 당장 운동화 끈을 매고, 책을 펼치라”고 강조했다. 최은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