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파고든 중국, 힘으로 막는 미국…중남미 ‘미중 패권전쟁’

중국, 베네수엘라 석유 80% 수입·대규모 차관
브라질·파나마 등 중남미 ‘중국 일대일로’ 참여
트럼프 “외부의 서반구 약탈 결코 용납 안해”
미국 ‘돈로주의’ 내세워 석유 인프라 재건·통제
중국 “공습·체포, 국제법·유엔헌장 위반” 반발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압송 작전 이후 정상 역할을 대행하게 된 델시 로드리게스(가운데) 부통령이 4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부통령 집무실에서 블라디미르 파드리노(왼쪽에서 두번째) 국방장관 등 각료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로드리게스 부통령을 향해 “옳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매우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AFP]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를 계기로, 무역·관세를 중심으로 전개돼 온 미중 패권 경쟁의 전선이 서반구(중남미)로 본격 확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돈로(Don-roe) 독트린’을 직접 거론하며 서반구 패권을 강조하자, 중국은 “어떤 나라도 세계 경찰 역할을 할 수 없다”며 정면 비판에 나섰다. 미국의 ‘서반구 재개입’과 중국의 ‘자원·금융을 통한 영향력 확대’ 충돌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트럼프 “먼로 독트린 넘어섰다”…中, 국제법 위반 프레임으로 맞불=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잡지 디 애틀랜틱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부통령을 향해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으면, (현재 뉴욕 교도소에 수감된) 마두로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미국은 점령이나 통치를 원하지는 않지만, 카라카스의 정책을 좌우할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전했다.

이는 베네수엘라를 직접 통치하기보다는 석유 산업 운영 방식 변화, 마약 밀매 차단, 무장단체 제거, 이란·헤즈볼라와의 관계 단절 등을 조건으로 ‘원격 지시’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을 겨냥한 발언도 내놨다. 그는 제임스 먼로 전 미국 대통령의 외교 원칙을 언급하며 “우리는 먼로 독트린을 뛰어넘었다”며 “미국은 외부세력이 서반구에서 우리 국민을 약탈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4일 국가안보전략(NSS)에서도 “수년간의 방치 끝에 미국은 서반구에서의 우위를 회복하고 먼로 독트린을 재확인하고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서반구에서 역외 세력의 영향력 확대를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분명히 한 셈이다.

중국은 즉각 ‘국제법 위반·주권 훼손 프레임’으로 대응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개입과 마두로 대통령 체포를 “국제법과 유엔 헌장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행위”라고 규정하며 즉각 중단과 석방을 촉구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같은 날 “무력 사용이나 위협, 한 국가의 의지를 다른 국가에 강요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어떤 나라도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결코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마두로 대통령이 미군에 체포되기 직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를 만난 사실이 확인되면서 미중 간 긴장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체포 전날인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추샤오치(邱小琪) 중남미·카리브해 담당 중국 특사와 회동한 영상을 공개하며 “중국과 베네수엘라의 굳건한 형제애와 우정을 재확인한 자리였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가 다른 지역 분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군사 개입이 국제적 ‘분쟁 억제 규범’을 약화시킬 경우, 대만 등 다른 지역에서도 무력 사용의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반구를 둘러싼 미중 이해관계 충돌이 한층 선명해졌다는 것이다.

▶석유·차관으로 美앞마당 파고든 中, 베네수엘라가 중남미 영향력의 축=중국의 중남미 영향력 확대는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가 수출하는 원유의 약 80%를 사들이며 경제 협력을 이어왔다. 트럼프 대통령 1기 시절인 2019년 미국이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을 제재했지만, 중국은 이른바 ‘그림자 선단’을 활용해 원유 수입을 지속했다.

금융 지원 역시 핵심 수단이다. 콜롬비아 싱크탱크 안드레스 벨로 재단이 202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중국이 중남미 각국에 제공한 차관 규모는 총 1360억달러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620억달러가 베네수엘라에 집중됐다. 석유를 담보로 한 차관 구조를 통해 중국은 에너지 확보와 동시에 베네수엘라 재정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발판은 베네수엘라에만 머물지 않는다. 다수의 중남미 국가들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남미 최대 규모의 심해항으로 꼽히는 페루 창카이항이 대표 사례다. 파나마가 2018년 중남미 국가 중 처음으로 일대일로에 참여한 이후,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불거진 배경에도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콜롬비아 역시 지난해 5월 일대일로 참여를 공식 선언했고, 중국은 브릭스 신개발은행(NDB)과 함께 중남미 전역에 350억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교역 구조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세 전쟁 과정에서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줄이는 대신 브라질산 대두 비중을 약 80%까지 끌어올렸다. 구리 수입에서도 칠레와 페루가 최대 공급국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맞서 미국은 베네수엘라 석유 유통과 금융 거래에 관여한 중국 본토 기업은 물론 홍콩 소재 기업까지 제재 대상으로 포함시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우회 거래와 결제에 홍콩 기업들이 활용돼 왔다는 판단에서다.

베네수엘라는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미중 패권 경쟁의 새로운 시험대로 떠올랐다. 중국은 자원과 차관으로 중남미에 뿌리를 내려왔고,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력과 제재를 결합해 이를 차단하려는 구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중남미는 미국의 앞마당’이라는 오래된 지정학이 트럼프식 언어와 행동으로 재가동되면서, 미중 패권 경쟁의 무대는 아시아를 넘어 서반구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지연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