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말 한마디에…가격 내린 설탕·밀가루, 식품업계 확산 촉각

CJ제일제당 등 주요 업체, 평균 4~5%대 인하
담합 의혹 속 李대통령 “물가 불안정” 결정타

빵·라면 등 원료…“도미노 인하 가능성 낮아”
“물가 상승 버틸 체력 없다” 부작용 우려도


검찰이 최근 밀가루·설탕 가격 담합 혐의로 제분·제당 업체 관계자들을 기소한 가운데 관련 업체들이 잇따라 제품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한 시민이 설탕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주요 설탕·밀가루 생산업체들이 업소용(B2B) 및 일반 소비자용(B2C) 제품의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물가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로, 최근 검찰이 기소를 결정한 가격 담합 의혹에 대한 압박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라면, 과자 등 주요 식품 원료로 쓰이는 설탕·밀가루 가격 인하가 식품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 들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전날 B2C 설탕·밀가루 전 제품의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 백설 하얀설탕, 갈색설탕 등 B2C 설탕 제품 총 15개 품목(SKU) 가격을 평균 5% 내리기로 했다. 백설 찰밀가루, 박력1등·중력1등·강력1등 밀가루 제품 총 16SKU 가격도 평균 5.5% 인하한다. 설탕과 밀가루 제품군의 최대 인하율은 6%다. CJ제일제당은 “최근 국제 원당·원맥 시세를 반영하고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적극 동참하는 차원에서 가격을 내리기로 했다”며 “명절을 앞두고 소비자 부담을 더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조동아원도 같은 날 박력1등, 강력1등 밀가루 20㎏ 대포장 제품과 1㎏, 3㎏ 가정용 소포장 제품 가격을 평균 5.9% 인하하기로 했다. 모두 중식용 고급분과 중력, 제과제빵의 원료다. 삼양사도 B2B, B2C 설탕·밀가루 가격을 평균 4~6% 내리기로 결정했다. 삼양사 관계자도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부담 완화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했다.

대한제분은 지난 1일 가장 먼저 밀가루 일부 제품의 가격을 평균 4.6% 인하했다. 주로 업소용으로 공급되는 곰표고급제면용(호주산), 곰(중력1등), 코끼리(강력1등) 20㎏ 대포장 제품과 유통업체에 공급하고 있는 3㎏, 2.5㎏, 1㎏ 제품 등이 대상이다.

가격 인하를 결정한 업체들은 국내 설탕·밀가루 시장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한 곳이자, 최근 가격 담합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곳이다. 검찰은 대한제분과 사조동아원, 삼양사 등 6개 업체 대표 및 임직원 14명을 앞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추산한 담합 규모는 5조9913억원에 달한다. 국내 설탕시장의 90%를 차지하는 CJ제일제당, 삼양사의 임원 등도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이 3조2715억원 규모의 설탕 가격을 담합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최근 밀가루·설탕 가격 담합 혐의로 제분·제당 업체 관계자들을 기소한 가운데 관련 업체들이 잇따라 제품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 사진은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 내 밀가루제품 판매대의 모습. 임세준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이 같은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물가 안정’ 주문이 가격 인하의 결정타가 됐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이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경제 지표가 좋아지더라도 실생활과 밀접한 장바구니 물가가 불안정하면 국민 삶의 개선을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은 “독과점을 이용해 국민에게 고물가를 강요하는 행위는 국가의 공권력을 총동원해 반드시 시정하기를 바란다”며 담합 의혹도 겨냥했다.

설탕·밀가루는 식품 전반에 사용되는 원료들이다. 이번 가격 인하가 빵, 과자, 라면, 아이스크림 등 식품 전반의 가격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식품업계에서는 ‘도미노 인하’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설탕과 밀가루가 제품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며 “카카오나 식용 색소, 향료 등 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료들은 오히려 거시경제 물가 상승으로 매년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식품사들은 해외 수출에 주력하는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연간 영업이익 5%를 밑도는 실적 악화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가 사실상 ‘물가 억제’에 해당한다는 우려 섞인 시각도 존재한다. 지난 윤석열 정부 때부터 이어졌던 물가 압박이 누적되면서 향후 가격 인상폭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됐던 ‘MB 물가지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라면·만두 등 52개 생활필수품에 대한 가격 관리를 실시했으나, 시행 약 3년 5개월간 해당 품목의 평균 가격상승률은 20.42%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의 영업이익이 평균 7~8% 이상이었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원가 상승을 버틸 체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누적된 요인 만큼 많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이 최근 밀가루·설탕 가격 담합 혐의로 제분·제당 업체 관계자들을 기소한 가운데 관련 업체들이 잇따라 제품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 사진은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 내 밀가루 및 설탕 제품판매대의 모습. 임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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