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왜 트리마제가 아닐까”…아이들의 눈으로 본 ‘오감도’ [고승희의 리와인드]

오는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아이들이 쓴 공포의 무대 언어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국립극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붉은 커튼 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실 세상은 무서운 것투성이다. 90년 전 경성의 도로를 질주하며 ‘무섭다’고 외치던 13인의 아해는 2026년 서울에서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무서운 것들’이 많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어른이 돼도 왜 그리 ‘무서운 것들’이 많은지, 9명의 아이가 뱉어낸 무서움은 그들의 전유물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근원적 공포로 전이된다.

1934년, 한국 문단의 거대한 ‘형이상학적 스캔들’과 같았던 시인 이상의 ‘오감도’가 90년의 시공간을 가로질러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로 환생했다. 극단 공놀이클럽을 이끄는 강훈구 연출가를 통해서다.

이상의 시 ‘오감도’에선 ‘근대’라는 전례 없는 변화와 공포를 마주한 아이들이 탈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을 질주하는 모습을 그린다. 띄어쓰기를 침묵한 파격적 형식의 시(詩)가 품은 신경증적 불안은 오늘과 만나 눈앞에 잡히는 두려움으로 무대화됐다. 상징적 존재였던 ‘아해들’이 9~16세, 구체적 ‘삶의 경험’을 가진 아이들로 실체화되자, 시는 이해가 쉬워졌다. 난해했던 시적 언어는 아이들을 만나 생동감 넘치는 일상어가 된 것이다.

디즈니 거부한 ‘진짜’ 아이들의 세계


“어린이를 좋아해 어린이 연극을 보러 다니고, 어린이가 주인공인 연극을 만드는 것”이 이 연극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강훈구 연출가는 이 작품으로 동아연극상의 ‘새개념 연극상’,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받았다. 연극은 강훈구 연출가와 그가 ‘회장’ 직함으로 있는 공놀이클럽의 창작 방향성을 고스란히 품고 태어났다.

강 연출가는 프로그램 북을 통해 “공놀이클럽은 어린이들을 위해 ‘디즈니’ 같은 환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을 반대한다”며 “어린이들은 우리와 완벽하게 같은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국립극단 제공]


이러한 작업 방향성은 무대 아래에서 아이들은 온전히 한 명 한 명의 예술가이자 공동창작의 주체로, 무대 위에선 자신들의 감정과 일상을 감각하는 배우로 만든다.

연극의 대본 역시 짜이지 않고 ‘아이들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다. ‘아빠의 실체’를 폭로한 박아윤 양은 “대사를 짜면서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꾸다 보니 머리가 꼬여 완성이 잘 안됐다”며 “쓰면서도 이걸 적어도 되나, 아빠의 체면이 좀 걱정됐다”고 말했다. 김지은 양은 “대본이 되게 복잡하다. 적혀 있는 것도 계속 바뀌고, 매일 달라지다 보니 외우는 것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비트코인과 SK하이닉스, 트리마제…아이들이 마주한 괴물들


“제4의 아해도 집 무섭다 그러오.”

서울 안산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박아윤 양. 아이는 집이 무섭다고 말한다. 태권도가 특기인 ‘테토녀’라고 프로그램북에 자신을 소개한 박아윤 양은 외딴섬 같은 둥그런 단상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아이는 주말이면 엄마, 아빠와 함께 놀고 싶은데 고단한 직장인 ‘엄빠’는 해가 중천에 떠도 일어날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아빠는 충청북도 음성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는데요. 주말에만 서울 집에 와요. 주말에는 나랑 놀아줘야 하는데 계속 SK하이닉스 주식이랑 비트코인을 보고 있어요. 우리 엄마는 간호사예요. 주말에는 병원에 안가서 나랑 놀아줘야 하는데 계속 핸드폰으로 쿠팡 쇼핑을 하고 있어요.”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국립극단 제공]


부모의 관심을 끌어보려 무심코 이 말 저 말을 던지면, 엄마 아빠는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며 이내 부부싸움을 한다.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아이의 주말엔 괴물이 산다. ‘안식의 공간’이어야 할 집이 무관심의 섬으로, 다툼의 전장으로 변모할 때 아이들이 느끼는 공포는 실존적 위협이었다. 부모님이 무섭다는 제3의 아해 역시 ‘보호의 공간’이 ‘부모의 기대’와 ‘억압’으로 뒤바뀌는 위협의 실체를 보여준다.

연극은 이상의 시를 모티프 삼아, 아이들의 두려움을 꺼내 13개의 장면으로 구성한다. 제작 과정이 독특했다. 강훈구 연출가는 지난 8일 진행된 예술가와의 대화를 통해 “오디션에선 어린이 배우들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소개하는 과제를 줬다”며 “모두가 둘러 준비해 온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누가 제일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지를 좀 관찰했다”고 말했다.

저마다의 일상을 보내왔고, 배우를 꿈꾸기도 꿈꾼 적이 없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오디션에 지원했다. 서울 휘봉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지은 양은 “연기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해 어린이가 하는 연극이나 뮤지컬에 신청을 하다 ‘오감도’ 오디션에서 합격했다”며 “그런데 연극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금은 그 아픔을 견뎌내고 있다”고 했다.

김지은 양은 제7의 아해다. 그의 ‘공포’는 스마트폰. 한 줄 한 줄 이어지는 대사는 지금 우리 사회의 거울 같아 눈을 질끈 감게 된다. 디지털 중독에 잠식된 자아, 물질적 풍요가 계급이 된 사회의 일그러진 욕망이 아이들의 투명한 대사로 폭로된다.

“우리 아빠는 왜 일론 머스크가 아닐까. 우리 집은 왜 트리마제가 아닐까. 나는 왜 엔비디아 주식이 없을까. 나는 왜 이번 여름에 코타키나발루에 가지 못할까?”

‘영앤리치’가 꿈이 된 세대, 아파트 브랜드와 평수가 자부심이 된 시대의 자화상이 아이들의 시선에도 고스란히 담겨 서늘한 감각을 깨운다. 아이돌이 무서운 제8아해의 공포 역시 획일화된 동경과 욕망의 결과를 담는다.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국립극단 제공]


은유를 넘어 실존적 고통과 연대


이상의 시를 있는 그대로 재해석한 장면은 6장이다. 서울을 과일로 채우고 싶다는 어린이 배우의 이야기와 함께 1930년대 경성의 모습이 영상을 통해 등장한다. 강 연출가는 “일제 강점기에 차가 쌩쌩 달리는 큰 도로가 생기고 군대가 들어오는 모습을 처음 아이들은 굉장히 놀랍고 위축됐을 것 같다”라며 “근대라는 시스템에 대한 공포에 아이들이 질주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시의 해석을 가장 적극적으로 담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아이들의 공포를 담은 제11장 ‘노키즈존’, 미래를 박탈당하는 거대 폭력에 대한 공포를 보여준 제12장의 ‘전쟁’, 자아의 근원적 불안을 다룬 마지막 제13장까지, 연극은 시적 은유를 성큼성큼 건너 실존적 고통을 쉬운 언어로 이야기한다.

‘화해’와 ‘연대’로 난해한 시를 풀어낸 연극은 무대와 객석, 극과 현실의 객석을 허문다. 한 줄로 선 배우들이 자기의 꿈을 말하는 순간 장치는 극대화돼,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어른 배우 남재국은 “한 달에 80만원씩, 2027년까지 끊기지 않고 적금을 내는 것이 꿈”이라고 했고, 이지민은 “우리 집 강아지가 말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어린이 배우들은 학업과 시험 성적, 운동 역량의 향상을 꿈으로 말한다. 무대의 언어를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 더 가까이 전달하는 명민한 전략이었다.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국립극단 제공]


여전히 무서운 어른, 공포에 사로잡힌 아이들을 보듬는 연대


작품의 백미는 성인 배우와 어린이 배우가 마주하며 나누는 이야기다. “어른이 돼도 무서운 것이 많다”는 성인 배우의 고백은 연극 내내 차마 웃을 수 없었던 불안과 두려움, 씁쓸함의 정체를 상기한다. 아이와 어른이 나누는 연대의 포옹은 어린 시절의 두려움을 더 이상 꺼내지 못하게 된 어른들을 향한 위로이자, 이 모든 ‘공포’를 통해 세대를 초월한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연극의 놀라운 성취는 상징적이었던 아해의 존재를 실체화했다는 데에 있다. 연출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압박, 그로 인한 두려움을 고발한다. 아이돌 산업의 욕망에 노출되고, 스마트폰의 도파민에 중독되고, 전쟁의 위협에서 미래를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집과 학교에선 너무 많은 기대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상의 ‘오감도’가 담아낸 디스토피아의 현재와 다르지 않다.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라는 문장으로 끝맺는 이상의 시는 ‘무서운 걸 무섭다고 말하는 세상에서도 나로 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로 마무리한다. ‘무섭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른들의 내면에 숨어든 ‘무서워하는 아해’를 마주할 준비가 됐냐고 연극은 묻는다. 해석에만 수백 건의 논문이 필요한 이상의 시 ‘오감도’를 전위적이면서도 따뜻하게 재해석한 진지하고 아름다운 답이 바로 이 무대였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