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모두 재택근무 시 평생 출산 기대치 0.32명↑”

스탠퍼드 블룸·데이비스 연구팀, 38개국 1만9000명 분석
한국 등 低재택근무 국가, 출산율 4~5% 상승 가능성


현대모비스 직원이 자택에서 회사의 원격 업무 시스템을 이용해 화상 회의를 진행하며 재택근무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제공]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재택근무가 단순한 근무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출산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 이후 확산된 원격근무가 가정의 시간 배분 구조를 바꾸면서 아이를 낳을 가능성을 높인다는 분석이다. 현금 지원 중심의 기존 저출산 정책과 달리, 노동시장 구조 변화 자체가 출산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5일 미국 스탠퍼드대 니컬러스 블룸 교수 등이 최근 발표한 ‘재택근무(Work from Home and Fertility)’ 연구에 따르면, 주 1일 이상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최근 출산 경험과 향후 출산 계획이 모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38개국 1만9277명의 응답자를 분석한 ‘글로벌 근무형태 조사(Global Survey of Working Arrangements)’와 미국 내 13만명 이상의 설문 자료를 결합해 재택근무 여부와 출산 행동의 관계를 살폈다.

연구 결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재택근무를 하는 여성은 2023~2025년 사이 실제 출산이 평균 0.037명 더 많았고, 미국 데이터에서는 그 차이가 0.091명까지 확대됐다. 출산 계획 역시 재택근무 여부에 따라 뚜렷하게 달랐다. 연구진은 “주 1일 이상 재택근무라는 최소 수준의 유연성이 출산 결정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부부가 함께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 효과가 더 컸다. 두 사람이 모두 주 1일 이상 재택근무를 할 때 평생 예상 자녀 수는 그렇지 않은 가구보다 0.32명(약 14%)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그 격차가 0.45명(17.5%)까지 확대됐다. 연구진은 통근 시간 감소와 육아·가사 부담 완화로 인한 ‘시간 여유 효과’가 이러한 결과를 만든 것으로 해석했다.

직종별 차이도 분명했다. 대학 교육을 받은 전문·사무직처럼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자리에서 출산 증가 효과가 뚜렷했지만, 현장 근무가 필수적인 직종에서는 선택 자체가 제한적이었다. 실제로 직업별 재택근무 가능 비중이 7%포인트 높아질 경우 1년 내 출산 확률이 평균 대비 약 13.8%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재택근무 기회가 노동시장 내 격차와도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재택근무 시간 40국 중 ‘최하위’ [헤럴드경제 DB]


국가 차원의 영향도 제시됐다. 연구진은 재택근무 확산 수준을 북미·영국 평균으로 높일 경우 한국과 일본의 출산율이 약 4~5% 상승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한국은 국가별 대졸 근로자의 평균 주당 재택근무 시간이 가장 낮은(0.5일) 국가다. 미국에서는 재택근무가 전체 출생의 8.1%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분석됐는데, 이는 연간 약 29만1000명의 출생에 해당하는 규모다. 연구진은 이러한 효과가 일부 국가에서 정부의 보육·교육 지출 확대보다 더 클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연구진은 재택근무가 출산율 하락 추세를 근본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만능 해법’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교육 경쟁과 양육비 부담, 사회적 가치관 변화 등 구조적 요인이 여전히 출산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교육 경쟁과 장시간 노동 문화가 재택근무 효과를 제한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김태형 바이오넥서스 대표는 “한국처럼 재택근무 비중이 낮은 환경에서는 유연근무 확산이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현실적인 레버가 될 수 있다”며 “기업들도 주 4일제와 재택근무를 결합한 근무 방식 도입을 시도하고 있는 만큼, 이런 변화에 대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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