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까지 4~5년…일반사건에 비해 2배
피해 회복 핵심 속도인데 골든타임 놓쳐
신속재판 위해 디스커버리제도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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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하이닉스 협력업체 부사장 A씨는 2018년부터 SK하이닉스와 협업을 하며 알게 된 HKMG 반도체 제조 기술(신소재를 사용한 최신 반도체 제조 공정 기술)과 반도체 세정 레시피를 중국 반도체 경쟁업체에 유출했다. 2020년부터 약 1년 간의 검찰수사를 거쳐 2021년 1월 구속기소된 A씨는 약 53개월이 지난 2025년 6월에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확정받았다. 범행 시점으로부터 처벌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기술유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은 이에 대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수사 단계에서 발생하는 압수수색 등으로 기업 평판에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확정판결까지 통상 4~5년 이상 소요되면서 사법 리스크에 장기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사이 유출된 기술에 대한 보호는 이뤄지지 않아 기업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19일 경찰청에 따르면 2025년 경찰이 적발한 기술유출 범죄 건수는 179건(국내 유출 146건·해외 유출 33건)으로, 2021년 89건에 비해 약 2배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해의 경우 이틀에 한 번꼴로 기술유출이 일어난 셈이다. 기술 유출 범죄 피해액은 최근 5년간 23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기술유출 범죄는 증가세에 있는데, 재판에 소요되는 시간은 여타 사건에 비해 긴 상황이다. 대법원 사법연감 등에 따르면 일반 형사사건은 1심 판결까지 통상 5~8개월이 걸리는 있지만, 기술 유출 사건은 평균 1년을 넘기게 되고 3년을 초과하는 경우도 있다. 대법원 확정까지는 통상 4~5년 이상으로, 일반 형사사건(1~2년)에 비해 두배 이상으로 걸린다. 재판이 장기화될수록 기업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회복 시점이 지연될 수 밖에 없다.
▶4건 중 1건은 ‘혐의없음’ 종결=수사에 임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여기에 큰 에너지를 쏟을 수 밖에 없다. 장기간에 걸쳐 수차례의 압수수색과 수십 명의 참고인 조사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4년 삼성전자 전직 임원이 중국 지방정부와 합작으로 반도체 제조업체 ‘청두가오전’을 설립, 반도체 전문 인력을 대거 영입해 핵심 반도체 기술인 18·20나노급 D램 공정 기술을 유출한 사건 당시에도 삼성전자는 수사에만 1년 반 가량의 시간을 쏟아 부어야 했다.
수사 과정에서의 기업 이미지 훼손도 적지 않다. 수사기관은 증거 확보 과정에서 압수수색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평판 하락까지 입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수사기관과 얽힌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고 리스크인데, 기업은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압수수색’이란 단어와 함께 보도가 되다보니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과정을 거쳐 검찰로 송치되더라도 유무죄 여부를 따지는 기소로 이어지는 경우가 5건 중 1건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재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기술유출범죄 처리 현황에 따르면 구속 구공판·불구속 구공판·구약식을 포함한 기소율은 18.7%로 나타났다. 4건 중 1건(25.75%)은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혐의없음으로 끝났다.
▶美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필요성도=이처럼 저조한 기소율은 민사 재판에서도 기업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기업들은 형사 재판과 병행해 유출 기술 사용을 막기 위한 ‘영업비밀 침해금지’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데, 기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민사에서도 침해 사실이 인정될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재판 장기화 역시 기술에 대한 시장 가치 하락이라는 2차 피해를 야기한다.
기술 유출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한 변호사는 “피해 회복의 핵심은 속도인데, 기소와 재판이 지연될수록 영업비밀이 추가로 노출될 위험만 커진다”며 “결국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의 신속성을 위해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를 들여오자는 주장도 나온다. 디스커버리 제도란, 정식 재판 전 소송 당사자들이 서로 가진 증거와 서류를 강제로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하는 제도다. 기술 유출 소송에서 증거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수단으로 꼽힌다.
아울러 형사절차에서 피해자의 절차 참여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술적 전문성이 높은 기업이 수사 및 재판 과정에 직접 참여해 피해 사실을 보다 정교하게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술유출 사건 전담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은 다수의 증인과 대형 로펌을 앞세워 물량 공세를 펼치지만, 정작 피해 기업은 제때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지영·박혜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