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사람, 의리”똥지게로 시작해 히로시마 소득세 1위 된 ‘히로시마의 거인’ 권양백 성공스토리[김영철이 간다]

권양백 회장(왼쪽)과 배우 김영철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지난 18일 방송된 KBS 1TV 설 특집 ‘글로벌 한인기행-김영철이 간다’ 2부에서는 원폭의 상처와 조선인이라는 차별을 딛고 히로시마 고액납세자 1위에 오른 재일동포 기업인 권양백 하쿠와그룹 회장(82)의 삶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이날 방송에서 김영철은 ‘히로시마의 거인’ 권양백 회장을 만나기 위해 일본 삼대 절경 중의 하나로 꽃사슴이 한가로이 노니는 히로시마의 앞섬 미야지마 섬을 찾았다.

권양백 회장의 부친은 15살에 일본에 건너왔다. 아버지의 가난과 차별의 굴레는 자식에게 이어졌다. 권 회장은 “조선인은 배움과 일자리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취직할 데도 없었고 토목 아니면 위생 노동밖에 없었다. 위생 노동은 분뇨 수거 노동이나 쓰레기 소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권양백 회장의 출발도 단 한 대의 분뇨 수거차였다.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분뇨수거차를 금차로 바꾸었다.

“저는 직원들과 일심동체다. 직원이 아프면 나도 아파. 직원이 중요하다. 직원이 재산 아닙니까.”

권양백 회장

직원들을 소개하는 권양백 회장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따뜻한 리더였다. 정장을 입고 분뇨 차 호스를 끌어당기는 일을 직접 도와준다. 이런 노력 덕분에 권 회장은 직원 1500명에 6개의 자회사를 거느리며, 빚이 없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노무라 증권의 한 간부는 권 회장의 하쿠와 그룹을 “자금력과 신용이 좋은 회사. 무엇보다 사람을 당기는 권 회장의 판단력, 속도가 강점인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권 회장은 차별과 가난, 재일동포로 살아야 했던 설움을 딛고 ‘정정당당하게 사업하자’는 철칙 하나로 히로시마시 고액납세자 1위로 등극했다. 권양백 회장은 “한국 사람이 이렇게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는 걸 내가 보여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 말 속에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정정당당하게 지켜낸 한 재일동포 기업인의 다짐이 담겨 있었다.

그는 손자, 며느리들을 데리고 조상의 묘가 있는 경북 청송을 방문하면서 “우리는 한국인이다”며 근본을 잊지 않도록 가족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권 회장 가족

120만여명의 인구가 사는 히로시마시의 재일교포는 6400명 정도. 권 회장은 민단 학교의 520명에 장학금을 지원했다. 히로시마 민단 부단장은 “권 회장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저희 동포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권양백 회장의 성공은 결코 개인의 부와 명예에 머물지 않았다. 재일동포 2세인 권양백 회장은 1944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악몽 같은 원폭을 겪었다. 당시 조선인 원폭 사망자만도 2만여명이나 된다고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먹고 살기위해 일본, 특히 히로시마와 오사카시 등지로 많이 갔다. 그래서 히로시마 원폭은 한국인의 비극이기도 하다.

평화의 공원내 위령비를 참배하는 권 회장과 김영철

“우리 부모님이 그때 산이 움직였다. 산이 솟아올랐다고 하더군요”

이날 방송에서 김영철은 권양백 회장과 함께 원폭 희생자들의 아픔이 새겨진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찾았다.

김영철이 당시 무고한 한국인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울컥한 감정을 보이자 권양백 회장은 “히로시마에 사는 한국 사람은 왜 이렇게 불쌍하나 싶다. 위령비를 볼 때 진짜 불쌍하다”라며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이곳 땅에서 어렵게 살아오고, 이런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강제동원된 노동자, 생계를 위해 있던 한국인들이 피해자가 됐다. 죽는 것도 불쌍한데, 왜 죽어서도 차별받느냐.”

원폭 한인 희생자 위령비

피해자임에도 피해자라 말하지 못했던 이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일에 꾸준하게 앞장서 온 권양백 회장은 마침내 1999년 끈질긴 설득과 노력 끝에 방치돼 있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원폭돔이 있는 ‘평화의 공원’ 안으로 이전하며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몇년전 필자도 이 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런 역사가 있는지를 몰랐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스러져간 이들이 모두 평화롭게 계시기를 기원하기 때문이다. 위령비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무려 50년이 걸렸다. 초기 위령비 이전 운동을 추진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권 회장의 당시 모습은 청년 같았다.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운 한국인 전설의 타자 장훈(85)과의 만남 현장도 공개됐다. 히로시마에서 나고 자란 장훈은 자신도 원폭 피해자다. ‘원폭 한인 희생자 위령비’에는 당시 12살로 사망한 장훈의 큰 누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장훈 전 야구선수(왼쪽)와 권 회장

장훈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권양백 회장은 “장훈 씨를 보면 힘을 얻는다”라며 존경심과 고마움을 드러내, 차별을 실력으로 돌파한 재일동포라는 공통점으로 통하는 두 거인의 우정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장훈도 “재일동포로서 권 회장을 존중합니다”라고 말했다.

권 회장은 하루 아침에 직업을 잃은 야구선수들을 위해 사회인 야구단을 인수하기도 했다. 매년 20억원의 손실을 보지만 권 회장은 돈보다 의리를 중시했다. 사회인 야구단은 도시대항전에서 한때 4강에 오른 적도 있다. 야구단의 한 단원은 “회사 차원에서는 손해지만 다시 야구의 꿈을 좇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쿠와 그룹의 직원들은 권 회장을 북극성, 태양 같은 존재라고 했다. “북극성, 가장 빛나는 별이다. 목표로 삼고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모두 비춰주고 밝게 해주는 태양과 같은 존재다.”

권 회장은 사업이 되는 맨션을 짓지 않고 지역주민을 위해 18년간 적자인 호텔을 끌어안는 등 동포를 넘어 일본인들까지 감동시킨다.

‘동생’ 김영철과 ‘형님’ 권 회장

권양백 회장은 이처럼 ‘원폭 한인 희생자 위령비’ 이전 사업, 장학 사업, 지역 의료와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공헌을 이어가며 한인사회의 리더로 존경받고 있다. 체구는 작아도 누구보다 의지와 배포가 큰 거인인 권양백 회장의 삶을 따라가며 어느새 그를 한 명의 재외동포, 한 명의 기업인을 넘어 ‘인생의 선배’로 존경하게 된 김영철은 “제가 형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권양백 회장은 “영철아, 고마워”라며 흔쾌히 답했다.

설 특집으로 마련된 이날 방송은 단순히 일궈낸 부의 크기가 아닌 그 숫자 뒤에 숨은 눈물과 다짐, 재일동포로서 자기 존재의 증명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한 기업인의 삶을 통해 재외동포의 역사와 정체성을 되짚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다.

세계 각국에서 한인의 자부심과 위상을 드높이며 치열하고 위대하게 살아가는 재외동포들의 삶을 만나는 여정, 세계한인총연합회(회장 고상구)와 함께하며 강한 공영성을 지니는 KBS 1TV ‘글로벌 한인기행- 김영철이 간다’는 앞으로도 쭉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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