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치솟는 펄프…종이컵·택배박스 ‘도미노’ 가격인상 가능성 [중기+]

제지공장 [한솔제지]


산자부, 국제 펄프가격 6개월 새 10% 넘게 급등
러시아 막히고 남미는 기상이변… 펄프 공급 축소
담합 조사 받는 韓 제지사들 ‘적자냐’ ‘버티냐’ 기로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국제 펄프 가격 상승세가 2026년 들어서도 멈추지 않고 있다. 단기간 내 10% 넘는 급등이다. 문제는 펄프 가격 상승이 구조적인 원인 때문이란 데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펄프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어나는 추세다. 제품가 대비 원재료비 비중이 50% 안팎이나 되는 제지 업계는 가격 인상 압박이 심해질 전망이다. 올 하반기 소비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종이컵부터 택배박스까지 가격이 오를 개연성이 열려있다.

국제 펄프가격이 지난해 8월 630달러에서 올해 2월에는 740달러로 급상승 했다. 제지 업계의 통상 영업이익률은 3% 안팎인데, 제품가에서 원재료 비중이 높은 제지업계의 특성상 올해 하반기에는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펄프價 6개월 사이 10% 넘게 급등… “구조적 요인”


2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 등에 따르면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펄프(SBHK·미국 남부산 혼합활엽수 펄프) 가격은 지난해 6월 톤당 645달러에서 올해 2월에는 740달러로 11% 이상 급등했다. 관세청 무역통계(TRASS)에 따르더라도 국내 한솔제지 등 주요 제지사들이 브라질과 캐나다 등에서 들여오는 화학목재펄프(HS코드 4703)의 평균 수입 단가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2.5%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펄프 가격이 불과 6개월 사이 10% 넘게 상승한 데에는 국제 질서 및 환경요인 등 여러 구조적 요인들이 섞여 있다.

우선 국제 시장에서 유통되는 펄프의 공급이 줄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침엽수 펄프(BSK)의 최대 공급국가 가운데 하나인데, 유럽연합(EU)은 올해 1월부터 러시아 중앙은행 결제 시스템(SPFS)과의 연결을 금지했다. 러시아산 펄프를 수입하려 해도 대금 결제 자체가 불가능해진 셈이다. 여기에 러시아 내 펄프 공장들의 가동률이 기계 부품조달 차질로 인해 감소하면서 전 세계적인 ‘펄프 쇼크’가 일어났다. 여기에 국제 주요 선사들이 러시아 항구 입항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해지며, 목재 자원 유통이 어려워졌다.

국내 주요 제지사들의 목재 수입처인 남미에선 기상이변이 관건이다. 브라질은 지난해 8월 대규모 홍수로 인해 목재 채취 및 운송 인프라가 망가졌고, 남미 전역은 올해 상반기까지 라니냐 현상이 지속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는 남미 지역에서 생산되는 목재 칩(Wood ship)의 생산량을 줄이는 요인이 되고, 국제 시장에선 펄프 가격 인상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원자재 분석기관 패스트마켓(Fastmarkets)은 “러시아산 펄프의 공급 제한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남미의 기상 이변으로 펄프의 주원료인 목재 칩 가격이 치솟고 있다”면서 “브라질 등 국가에서 제지산업을 키우기 위해 원재료 수요가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제지업계 전문지 ‘펄프와치’도 올해 2월 보고서에서 “펄프 공급 측면의 여러 이슈가 발생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지공장 [한솔제지]


원재료 가격 비중 높은데… 적자냐 가격 인상이냐 ‘기로’


국내 주요 제지사들이 펴낸 사업보고서를 분석해보면 종이는 원재료비가 전체 제조 원가의 50% 안팎에 이를만큼 원가에 민감한 품목이다. 예컨대 A제지사의 경우(인쇄용지) 펄프 가격 비중이 원가의 50~60%에 이른다. 국내 대부분의 제지사들은 종이의 원자재인 펄프를 수입해서 사용하는데, 지금처럼 원자재 가격이 저점 대비 10%가 올랐다면 종이 제조 원가는 5%가 올라가게 되는 구조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산업전기료가 크게 오른 것도 원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국내 제지업계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2~3% 안팎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펄프가격 인상 요인만 가지고도 이미 올해 ‘적자 전환’은 불가피 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부 제지사들은 지난해 실적 발표 결과 이미 적자 전환했다. 여기에 종이 사용을 자제하는 문화가 보편화됐고, 스마트폰이 활성화 됐으며,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이 손에 꼽을만큼 줄어든데다 전기료도 크게 올라 제지업계가 전반적으로 힘들었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종이 제작의 상당 부분은 말리는 작업인데 대부분은 전기를 쓴다. 한해 전기료만 수천억원을 쓰는데, 이게 오르니 실적에 상당한 영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제지업계 안팎에선 판매 가격에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들이 나온다. 제지업계 대부분은 ‘사업간거래(B2B)’로 유지되고 있어 선계약이 관례인데, 대신에 계약을 갱신할 때엔 원가 인상분을 반영한 수치로 다시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원재료비가 올라, 팔수록 적자인 상황을 계속 버티긴 어렵다는 관점에서다. 이 때문에 계약 갱신 시차를 두고 올해 하반기엔 제지 업계가 가격을 인상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는 결국 종이컵, 화장지, 신문, 인쇄용지, 택배박스 등 소비재 종이 가격 상승 가능성을 키우는 배경이다.

다만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혐의’로 제지사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고, ‘중국 변수’는 제지업계가 당장 ‘가격을 올리겠다’고 결단하지 못하는 이유다. 공정위는 지난해 국내 주요 제지사들이 가격을 담합했다며 조사를 진행중인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중국 변수’는 최근 수년 사이 중국이 제지산업을 크게 육성하면서 생산량을 늘렸는데, 중국 경기 침체 장기화로 인해 중국 내에서 소비되지 못한 값싼 종이 상품들이 국제 시장에 풀리면서 전반적인 가격 인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국내 제지회사들이 가격 인상 결단을 늦추는 요인이다. 가격을 인상할 경우 기존 고객사들을 잃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제지 업계 관계자는 “종이 사업은 마진이 박하기 때문에 원재료비가 10% 오르면 사실상 적자 구조로 돌아선다. 영업이익률이 높아봤자 3% 안팎인 산업이다”며 “상반기까지는 담합 조사와 정부 눈치에 버텼지만, 하반기에는 ‘생존을 위한 가격 인상’ 국면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지업계에선 국내 제지사들의 ‘가격 담합’ 역시 중국산 저가 종이 공세에 대한 ‘공동대응’ 차원에서 였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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