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부상 끝에 찾은 ‘버팀’의 춤 [인터뷰]

국립무용단 이재화·이요음 부부
60분 확장판 ‘탈바꿈’의 진화
“한국적인 것은 곧 버티는 삶”

 

2014년 국립무용단 동기로 만나 부부가 된 이재화 이요음 [국립극장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용을 하지 않으면 안 아파도 되는데…”

통증은 일상이 됐다. 그런데도 몸과 마음은 춤을 기억했다. 추지 않으면 고통도 없었을 테지만, 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왜 그토록 놓을 수 없었을까. 이재화는 한동안 이 질문을 붙들고 지냈다.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동작 하나하나를 수행할 때마다 곳곳의 통증을 마주했다. 반복되는 수술과 재활에 ‘몸의 언어’들은 무뎌졌다.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굳은 관절을 억지로 펴고, 팔다리에 정중동의 호흡을 실었다. 고통이 일상이 된 시간 위에서, 그는 새로운 키워드를 찾았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일지 오래 고민했어요. ‘한국적’이라는 말은 좀 정체돼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국립무용단의 인기작품을 이끌었던 이재화가 ‘탈바꿈’(6월 19~21일, 국립 달오름극장)으로 돌아온다. 2024년 안무가 프로젝트 당시 30분 분량으로 올린 작품은 이번에 60분 분량으로 확장됐다. 전통 탈을 소재로 하나, 작품은 전통 양식을 재현하는 춤은 아니다.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닌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이재화는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전통의 창고에서 무언가를 꺼내와 지금의 감각으로 맛있게 내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2024년 국립무용단 안무가 프로젝트를 통해 선보인 뒤, 60분 확장판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는 ‘탈바꿈’ [국립극장 제공]

‘탈바꿈’은 의중적 의미를 가진다. 말 그대로 탈을 바꿔쓰는 행위를 명사화했고, 생물학 용어인 ‘탈바꿈’을 가져왔다. 그는 “‘탈바꿈’엔 완전 탈바꿈(탈태)’과 ‘불완전 탈바꿈(탈피)‘이 있다”며 “형태를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완벽한 탈피보다는, 형태를 지키며 새로운 결을 만들어가는 조합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영감의 씨앗은 우연한 곳에서 찾아왔다. 2~3년 전, 안동문화예술회관을 찾은 로비에서 움텄다. 전국 각지의 탈 백여 개를 마주한 그날, 머릿속에 온갖 춤들이 요동쳤다. 각기 다른 색과 표정의 탈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다고 봤다.

그는 “한국 춤을 추고 있지만, 탈춤은 또 다른 영역이라 전통 탈이 있다는 정도만 알았다”며 “제각각의 표정과 색깔이 여러 인종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같기도 했다. 다양성과 존중이 화두가 된 지금 시대와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명실상부 ‘한국 춤의 장인’을 자부하는 이들에게도 탈춤은 낯설었다. 이재화와 국립무용단 단원들은 고성탈춤과 봉산탈춤, 강령탈춤을 배우며 기본기부터 다졌다. 탈춤의 기초적 움직임을 들여다보는 이 과정은 단원들에게도 쉽지 않았다. 이재화 안무가가 ‘탈바꿈’ 안에 담고자 했던 것은 탈춤이 만들어가는 춤사위만이 아니다. 그는 “탈춤 안에 있는 서사에 더 끌렸다”며 “이 안에는 웃음도 있고 풍자도 있지만 삶의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2024년 국립무용단 안무가 프로젝트를 통해 선보인 뒤, 60분 확장판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는 ‘탈바꿈’ [국립극장 제공]

‘탈춤’의 주역 중 한 사람은 이재화의 국립무용단 동기이자 아내인 이요음이다. 이요음은 “리듬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그 리듬과 캐릭터에 맞춰 몸이 변화해야 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고 했다.

LED 탈을 선택한 것도 갖가지 탈이 그려내는 인간군상을 살리려는 고민의 결과였다. 초연 당시엔 ‘종이 탈’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재화는 “여러 겹을 겹쳐쓴 뒤 한 장씩 벗겨내는 방식을 떠올렸는데, 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몸의 질감과 에너지가 달라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LED 탈을 선택했다”고 했다. 초연 땐 블루투스 연결 문제로 진땀을 뺐으나, 올해는 다르다. 기술적 보완을 거쳐 무용수의 질감과 에너지를 즉각적으로 변환하는 시각적 ‘탈바꿈’의 핵심 장치로 진화했다.

‘탈바꿈’은 이재화 이요음 부부가 막막한 터널을 지나던 때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2018년 ‘가무악칠채’로 첫 안무작을 내놓았던 이재화는 이후 30분 분량의 이 작품을 60분 확장판(2020년)으로 선보이며 한국 무용계가 주목하는 안무가로 성장했다. 정작 그는 “‘가무악칠채’ 이후 내가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막막했다”고 돌아봤다. 그 사이 국립무용단의 다양한 작품에 조안무로 참여했고, 마침내 2년 전 ‘탈바꿈’이 세상에 나왔다.

‘안무가 프로젝트’ 작품 중 단연 돋보였던 ‘탈바꿈’은 60분 버전 확정 이후, 예기치 못한 사고가 찾아왔다. 지난해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2025 찾아가는 국립극장 x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 공연 리허설 중 이재화가 2m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로 추락한 것이다. 몇 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으며 한국춤을 추는 무용수로서의 삶을 돌아봤다. 그 시절 부부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2024년 국립무용단 안무가 프로젝트를 통해 선보인 뒤, 60분 확장판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는 ‘탈바꿈’ [국립극장 제공]

이요음은 “늘 한국 춤을 고민해 왔지만, 남편이 크게 다치며 내면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큰 사고는 지난해였지만, 무용수에게 부상은 잊힐 새도 없이 찾아온다. 이재화에겐 더 잦았다. 사고와 부상, 1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재활 기간이 이어졌다. 이재화는 “작품에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스스로 이겨내야 했던 시간이 자꾸만 대입됐다”고 했다.

60분 버전 ‘탈바꿈’의 가장 큰 변화는 ‘버팀’의 서사다. 안무가는 무용수로서 버티고 버텨온 날들을 몸의 언어로 풀어냈다. 옆에서 지켜본 이요음은 그 시간을 “가족 모두가 버텨야 했던 시기”라고 말했다. ‘버팀’의 서사가 완성된 배경이다.

춤을 추는 방식은 물론 안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는 “재활 과정에서 갖게 된 생각의 변화, 몸을 움직이는 방식이 달라졌다. 팔 하나를 들어 올리고, 무릎을 펴도 몸이 더 편안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맺고 풀고 감고 어르는 한국 춤에 익숙한 단원들에게 ‘탈바꿈’은 조금 다른 춤사위를 요구했다.

이요음은 “무용수로서 이재화는 워낙 리듬감이 남다르다. 바닥에서부터 ‘찐’으로 나오는 특유의 리듬감이 있는데, 그 부분이 ‘탈바꿈’에도 반영됐다”고 했다. 전통 타령 장단은 작품 안에서 현재적 리듬으로 변주했다. 이재화는 “탈춤에서 힙합의 느낌을 실었다. 사실 탈춤 자체가 전 세계 어디에 나가도 힙한 춤이기에 특별히 바꾸지 않아도 그것 자체로 새로운 감각의 한국춤이었다”며 “기술적으로는 이 춤이 아프지 않으면서 편하게 추는 춤”이라고 했다.

2014년 국립무용단 동기로 만나 부부가 된 이재화 이요음 [국립극장 제공]

그의 안무에 감정을 실어 표현하는 뮤즈는 아내 이요음이다. 2014년 국립무용단 입단 동기로 만난 두 사람은 2020년 결혼했다. 이재화는 “무용단에서도 난 잔잔바리의 양념 역할인데, (이요음은) 워낙 여주인공의 역할을 많이 해왔다. 어떤 안무가라도 탐낼 수밖에 없는 무용수”며 “경험이 많고 무대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안다. 안무가로서는 감정적인 부분을 표현할 때 이요음 무용수를 많이 쓰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이요음 역시 안무가로서의 이재화를 높이 평가한다. 그는 “무용수로서 안무가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정확하게 구현하는 것이 목표”라며 “무용수이자 안무가 이재화는 작품 안에서 풀고 싶은 고민과 욕망이 매우 큰 사람이다. 그런 부분은 무용수로서 부럽다”고 했다.

이 작품을 올리며 이재화의 춤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그는 “요즘 연습하면서 ‘대충 춰라’는 말을 많이 한다”며 “물론 진짜 대충 하라는 뜻은 아니다. 120%를 쓰려고 하지 말고 80%만 써도 충분하다는 뜻”이라며 웃었다. 이요음은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주변이 안 보인다”며 “‘대충’은 여유를 가지라는 뜻에 가깝다”며 남편의 말을 해석했다.

지난한 시간을 통과해 온 ‘탈춤’은 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부부가 겪어온 ‘버팀의 시간’은 치열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경쟁사회에서 저마다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모두의 이야기가 됐다. “한국인의 삶이 버팀의 연속이고, 특히나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잖아요.” (이요음)

‘탈바꿈’ 무대 중앙의 회전체는 작품 속 ‘버팀’을 상징하는 장치다. 누군가는 끝까지 붙들고, 누군가는 밀려나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잠시 쉰다. 이재화는 “사람마다 버티는 방식이 다르 이재화는 “사람마다 버티는 방식이 다르다”며 “악착같이 버티는 사람도 있고,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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