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담벼락 훼손 vs 시위 압박…청와대 앞 단식농성 무슨일이? [세상&]

국가유산청·농성단체 주장 엇갈려
경찰 수사 속 고지 여부 쟁점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태원전 외벽에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노동조합 우창코넥타지회의 철제 현수막이 세워져 있다. 윤승현 수습기자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윤승현 수습기자] 청와대 사랑채 앞 장기 단식농성을 둘러싸고 국가유산청과 농성단체의 주장이 정면으로 엇갈리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경복궁 담장 훼손 우려가 있는 시설물에 대해 여러 차례 계도 후 고발했다고 밝혔지만 농성단체들은 관련 설명이나 경고를 충분히 받지 못한 채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고 주장한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청와대 사랑채 인근 경복궁 담장 앞에서 농성을 이어온 일부 단체들을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대기업갑질피해자연대(대갑연) 관계자 이길재 씨는 지난 4월 6일 종로경찰서 지능범죄수사1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씨는 “벽에 낙서하거나 훼손한 적도 없고 피켓과 현수막을 세워둔 것이 전부”라며 “문화유산법 위반이라는 이야기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 당시 수사관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는 취지로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단식농성을 계속하니 다른 방법으로 압박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실제 17일 청와대 사랑채 앞 인도에는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노동조합 우창코넥타지회가 설치한 철제 트러스 구조물 1개가 놓여 있었다. 반면 대갑연 측은 자신들은 철제 트러스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트러스 설치 여부는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알렸다는 관리소…농성단체는 “들은 적 없다”

경복궁관리소는 문화유산 훼손 우려 때문에 고발했다고 설명한다. 국가유산청 소속 경복궁관리소 관계자는 “트러스가 담장 가까이에 설치돼 바람이나 외부 충격으로 문화유산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직원들이 현장을 순찰하며 관련 법령을 설명하고 여러 차례 협조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청 소속 경복궁 관리소 방호 직원들에게 공유된 고지사항. [경복궁 관리소 제공]

관리소에 따르면 방호 직원들은 현장에서 관련 법령과 처벌 규정을 담은 안내문도 공유했다. 안내문에는 “현수막 트러스 설치 장소는 인도를 포함한 국가지정문화유산 지정구역에 해당한다”며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1조의2에 따라 국가유산 경관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시설물 설치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또 문화유산법 제35조상 현상변경 허가 대상에 해당할 수 있으며 허가 없이 설치할 경우 같은 법 제99조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해당 관계자는 “현장에서 경복궁관리소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지속해서 안내했다”며 “신청서를 제출하면 관리소에서도 심의를 거쳐 검토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회 목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불허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행사나 시설물 설치는 심의를 거쳐 허가 여부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러스뿐 아니라 현수막을 담장이나 기와에 밀착시키거나 시위 물품을 담장 주변에 쌓아두는 행위도 훼손 우려가 있어 계도 대상”이라며 “경찰 입회 아래에서도 반복적으로 알렸고 즉시 고발한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경고 후 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농성단체들은 경고나 법률 설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우창코넥타지회 측은 “관리소 직원이 한두 차례 트러스를 빼 달라고 해 도로 쪽으로 위치를 옮긴 적은 있다”면서도 “문화유산법 위반으로 고발될 수 있다는 설명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갑연 측도 “경찰 조사 외에 별도 경고를 받은 적이 없다”며 “실제 훼손도 없는데 문화재 훼손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훼손 없는데 수사…시민 의견도 갈려

인근 주민 최모(52) 씨는 “경복궁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문화유산인 만큼 관리소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주연(40) 씨는 “실제 훼손 사례가 확인된 것도 아닌데 고발까지 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맞은편 담벼락 앞에 45일차 대기업갑질피해자연대 소속 단식농성자 이한수(69) 씨가 앉아 있는 모습.

경찰은 현재까지 추가 소환이나 송치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지난 4월 첫 출석 요구 이후 추가 소환이나 처분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으로 문화유산법 적용 범위와 관리기관의 조치 근거를 꼽는다. 김형원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국가지정문화유산 경계 안뿐 아니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도 문화유산의 경관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시설물 설치는 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트러스 설치 행위 역시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상 규제 대상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사전 경고나 고지 여부 자체가 범죄 성립을 좌우하는 요소는 아니다”라며 “법률적으로는 적용할 수 있어 보이지만 그동안 유사한 집회나 농성이 장기간 이어져 왔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고발을 두고 농성단체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배경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수사 과정에서 해당 시설물이 실제 법령상 제한 대상에 해당하는지 관리기관이 어떤 근거와 절차로 조치했는지가 주요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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