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진의 무비QnA] 박찬욱 감독도 손익분기점 걱정을 한다고요?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19금’ 영화라는 점에서 걱정이 많았죠. 투자자에게 걱정을 끼치면 어쩌나. 다음 영화에 투자를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가름하는, 많은 감독들에게 중요한 문제에요. 투자자들에게 도의적인 책임도 있고요.”

‘아가씨’로 7년 만에 한국 영화계에 복귀한 박찬욱 감독의 말이다.

“감독 입장에서야 내보이는 영화가 투자해 준 분들에게 손해만 안 끼치면 하는 바람 뿐인데, 영화 수출이 많이 돼서 큰 걱정은 덜었습니다.”

역시 박 감독의 말이다. 그는 영화 개봉 전부터 줄곧 ‘투자자’에 대한 걱정을 입에 올렸다.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한국 대표 감독임에도 ‘손익분기점(BEP)’ 걱정을 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놀라움은 곧 씁쓸함으로 이어진다. 이미 한국 영화계에선 “더 이상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 아니다”라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아직까지 관객들은 감독의 이름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막상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될 땐 감독은 한참 뒤로 밀려난다.

영화관 광고가 끝나고 불이 꺼지면 영화관, 투자제작사, 영화사의 로고가 순서대로 뜬 후에 ‘오프닝 크레딧’이 오른다. 제작투자자와 공동투자자의 이름들이 순서대로 천천히 나타났다 사라진다. 관객들의 집중력이 가장 쏠리는 첫 부분에서다. 감독과 주연배우의 이름은 한참 뒤에서야 등장한다.

이는 대기업이 한국영화 투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발생한 현상이다. 전 세계에 유일한 한국 영화만의 특징(?)으로도 꼽을 수 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감독이 아닌 ‘돈’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에 반발해 행동에 나서고 있는 영화인도 있다. ‘베를린’, ‘베테랑’ 등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은 새 영화 ‘군함도’에서 오프닝 크레딧에서 투자자 명단을 빼고 엔딩 크레딧으로 돌릴 것을 고려하고 있다. 그동안 영화 감독들이 투자자 눈치를 보느라 하지 못했던 일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영화가 완전히 자본에 종속되고 있는 상황을 성토했다.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영화는 완전히 대기업인 투자자가 제작을 관장하고 배급과 상영까지 수직화한, 철저히 상업적인 시스템으로 재편됐다”라며 “외국이라면 ‘독점거래법’에 제재를 받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영화가 돈의 노예가 되어 창의성이 무뎌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지난 몇년간 대자본 중심으로 한국영화들이 새롭게 편재됐다”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안에서 작가주의 감독 영화들이 간간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신기하면서도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영화계의 새 트렌드인 속편(시리즈물)을 기획하는 데도 감독의 기획력보다는 전작의 ‘흥행력’이 중요하다. ‘감독을 믿고’ 돈을 대어 줄 투자자들이 얼마나 모이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감독에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아이디어가 충분해도 투자를 받지 못하면 날개가 꺾일 수밖에 없다”라며 “투자자들에게는 영화의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흥행력을 더욱 중요시한다”라고 말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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