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일, 아파시오나 컴백 무대
클래식계 신인류 등장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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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시오나 트리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작은 두 손이 커다란 첼로의 어깨를 두드린다. 활의 선율보다 손끝이 먼저 음악을 만든다. 낮은 피아노의 박동 위로 미끄러지는 바이올린. 찰랑이는 머리칼처럼 휘몰아치는 연주가 끓어오른다. 너무도 앳된 얼굴을 한 10대 소년 소녀들의 음악은 위험하고 대담하다. 어른들의 세계에 미리 잠입하려는 비밀탐사대 같다. 피아졸라의 그림자가 드리운 불규칙한 리듬, 재즈의 호흡과 탱고의 열기 위에서 세 사람은 이전의 ‘영재들’과는 다른 연주 세계를 만든다.
유튜브 채널 ‘렛츠클레이(Let’s KLAY)’에 올라온 ‘탱고풍의 즉흥곡’. 예원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주호가 열세 살에 작곡한 ‘탱고풍의 즉흥곡’이 2024년 유튜브 채널에 공개되자, 단숨에 14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채널의 조회수 톱3에 올랐다. “정말 열세 살이 쓴 곡이 맞냐”, “놀라운 트리오”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2010년생 김주호(작곡, 피아노), 정현준(바이올린), 전서우(첼로)로 구성된 아파시오나 트리오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 새로운 시대의 10대 앙상블이다. 이번에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올해로 21회를 맞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SSF)에 역대 최연소 ‘앙상블’ 출연자로 이름을 올렸다. 앞서 조성진, 선우예권이 어릴 적 무대에 선 적은 있지만, 10대 앙상블이 이 무대에 ‘소환’된 것은 아파시오나(Appassiona Trio)가 처음이다.
최근 서울 서초동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세 사람은 “중학교 1학년이었던 2023년 만들어 어느덧 4년차 앙상블이 됐는데, 사실 중간에 2년의 공백이 있었다”며 웃었다. 그러니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아파시오나 트리오의 ‘컴백 무대’인 셈이다.
중학교는 새로운 세계였다. 아파시오나 트리오 탄생의 첫 단추는 김주호가 맞췄다. 2023년 봄, 예원학교 1학년 1학기 첫 향상음악회였다. 매주 금요일 5~6교시, 신관 강당에서 이어지는 학생들의 무대. 1972년부터 50년 넘게 이어진 전통 속에서, 작곡과 김주호는 자신의 곡을 연주할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그는 당시를 따올리며 “향상음악회는 다른 학생들의 연주를 듣고 전국의 수준을 가늠할 기회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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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시오나 트리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공] |
첫 영입 타자는 바이올린 전공생 정현준. 김주호는 “현준이가 연주하는 스트라빈스키의 짧은 소품이 주는 외로운 느낌이 인상 깊었다”며 “머리를 휘날리며 연주하는데 참 잘했다”고 돌아봤다. 감성과 테크닉이 어우러진 인재였다. 여기에 “두 남자 사이에서 잘 견뎌낼 활기찬 친구”이자, “잘 한다고 교내에서 소문났던” 전서우까지 합류해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됐다.
두 사람이 흔쾌히 승낙한 것은 ‘함께 만드는 음악’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중학교라는 보다 확장된 세계로 나와 맺는 첫 관계이자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음악을 만들어갈 기회였다. 정현준, 전서우 모두 “실내악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캐나다에서 살았던 전서우는 “캐나다에선 실내악을 했는데 한국에 돌아와 한 번도 못 해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정현준의 경우 “내가 먼저 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김주호의 제안을 반겼다. 특히나 당시 한국예술교육영재원에 다니고 있던 김주호는 이미 “1학년 사이에서 작곡을 잘하는 학생”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번 SSF에서 들려줄 음악이 세 사람을 뭉치게 한 바로 그 곡 ‘탱고풍의 즉흥곡’이다. 3분 36초 분량의 이 곡은 팀 이름에 딱 맞은 담대한 열정의 곡이다.
김주호는 “당시는 친구들의 좋은 평가에 목이 말랐다. 작곡가에겐 곡 발표 기회가 많지 않아 기억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탱고는 제가 쓰고 싶어 쓴 곡이었다. 피아졸라 곡을 인상깊게 들었고 카프스틴 같은 재즈에서 파생된 현대적 곡에 관심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재즈적 리듬에 첼로를 타악처럼 다루는 파격 시도까지 나온다. 김주호는 “솔직히 그때는 눈이 좀 돌아가 있었다”며 웃었다. 이 곡은 ‘직관적으로’ 태어났다. “한 음을 치면 ‘이거 좋다’ 하면서 구조적인 계획 없이 무의식에서 음악적 효과가 반영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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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정현준은 예원학교 1학년 때 자퇴, 홈스쿨링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한예종 조기입학을 준비 중이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공] |
이 트리오가 흥미로운 것은 작곡가와 한 팀이라는 데에 있다. ‘살아있는 작곡가’가 내 옆에서 함께 숨 쉰다는 경험은 두 연주자에겐 무척이나 특별한 경험이다.
정현준은 “돌아가신 작곡가들의 곡은 해석에 어려움이 있지만, 주호랑 같이 하니 오히려 편했다”고 한다. 작곡가가 바로 옆에 있다는 부담보다는 “해석에 대한 코칭”이 큰 강점이었다. 전서우 역시 “주호가 살아있으니 뭘 원하는지 물어볼 수 있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할 수 있게 해줘 편하다”며 “그렇게 빡빡하지 않다”고 했다. 정작 김주호는 “당시엔 어려서 디렉팅을 거의 못 했다”고 털어놨다.
“피아노만 알던 시절이라 다른 악기를 잘 몰랐어요. 지금 와서 보니 표기법도 엉망이더라고요. 이번 무대 준비하면서 거의 ‘수습’ 수준으로 다시 손봤어요.” (김주호)
아파시오나의 정체성은 ‘성장’에 있다. 작곡가와 연주자가 함께 자라는 앙상블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에 맞춰 음악도 성장했다. 2년 만에 다시 꺼내 든 곡은 사실상 ‘버전 2.0’에 가까워졌다. 멤버들도 서로의 변화를 체감했다. 정현준은 “주호 음악이 점점 성숙해지고 있다”며 “곡마다 색채감이 굉장히 뚜렷해요. 시간이 갈수록 음악 세계가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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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1학년 때 첼로를 시작한 전서우는 현재 국제학교에 다니며 음악을 병행하고 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공] |
전서우 역시 “예전보다 생각이 훨씬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김주호는 곧바로 “이해하기 힘든 말을 많이 한다는 뜻”이라며 웃었다. 둘 사이의 투닥거림에서 중재자는 정현준이다. 김주호의 언어를 전서우 ‘맞춤형’으로 통역하며 팀의 중심을 맞춘다. 열여섯답에 서로를 놀리며 키득거리고, 5분 단위로 싸우고 풀리기를 반복해도 ‘음악 이야기’를 시작하면 금세 자세부터 달라진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선 스파크가 튄다. ‘리더’가 없는 이 팀은 자유롭게 서로의 의견을 말하며 함께 음악을 만들어간다. 대화가 많아지는 순간이 있다. 세상은 이들을 ‘영재 앙상블’이라고 하지만, 정작 연습 과정에선 끝도 없는 무력감에 허덕인다. 김주호는 “연주를 듣고 ‘우리 왜 이렇게 못하냐’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대화가 시작된다”고 했다. 세 사람은 “딥한 싸움은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서로 반대 의견을 내는 일은 흔하다고 했다. 전서우는 “맨날 서로 반대한다”고 웃었고, 정현준은 “그 과정에서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말했다. “실내악은 결국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공통의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들이 SSF에서 연주할 프로그램은 팀의 성격을 그대로 닮았다.
아르노 바바자니안(Arno Babadjanian)의 피아노 3중주 f#단조 중 제3악장은 “트리오 결성 당시부터 세 사람이 ‘함께 하자’며 ‘위시 리스트’에 올려둔 곡”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 출신 작곡가 바바자니안의 이 곡은 소비에트 시대 실내악의 정수로 꼽힌다. 격렬한 감정과 민속적 색채가 뒤섞인 3악장은 세 악기 모두에게 고도의 앙상블 능력을 요구한다. “이번이 도전할 타이밍”이라는 정현준이 제안에 모두가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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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시오나 트리오의 첫 단추를 꿴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김주호는 8세에 쇼팽의 녹턴 전곡 듣고 피아노 시작했다. 그 무렵 인생 첫 자작곡도 나왔다. 예원학교 졸업 후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공] |
여기에 김주호가 쓴 ‘탱고풍의 즉흥곡’이 중간에 들어온다. 첼로의 타악적 주법으로 시작해 불규칙한 탱고 리듬 위로 세 악기가 대화를 나누는 이 곡을 통해 피아졸라의 영향 아래 성장한 10대 작곡가의 직관이 펼쳐지는 실험장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은 폴 쇤필드(Paul Schoenfield)의 피아노 3중주 ‘카페 음악’ 중 제1악장. 클래시컬 재즈와 클레즈머(동유럽 유대 음악) 전통을 결합한 이 곡은 현대 실내악 레퍼토리의 보석이다.
김주호는 “거시적으로 보지 않고 각자가 곡을 하나씩 보냈는데, 자연스럽게 레퍼토리가 짜였다”고 했다. 각각 다른 시대, 다른 지역, 다른 어법을 대표하지만, 모두 ‘전통 클래식’은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크고 웅장한 효과들이 이 곡들이 우리만의 색깔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김주호는 귀띔했다.
아파시오나 트리오는 클래식계의 신인류다. 요즘 K-팝 업계에 유행처럼 등장한 소위 ‘영크리에이터 크루’의 클래식 버전이다. 10대이면서, 직접 작곡과 연주를 하고, 일찌감치 유튜브 영상을 통해 먼저 이름을 알렸다. 이들의 성장 방식은 전통적인 클래식 영재 코스와도 다르다. 콩쿠르보다 유튜브가 먼저였다. 세 사람의 성장 과정도 한국 클래식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셋 중 둘은 홈스쿨링 중이고, 전서우는 국제학교에 다닌다. 김주호와 정현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기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정현준은 “학교에 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지만, 학교에 다니다 보면 정작 본인 실기 연습을 많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됐다”며 “홈스쿨링의 효과가 크다고 생각해서 자퇴했고, 아직 후회한 적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노부스콰르텟 멤버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김영욱을 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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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시오나 트리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공] |
김주호 역시 확고한 주관과 통찰로 홈스쿨링을 택했다. 그는 “중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내가 고등학교 가는 시간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원이 높은 명성을 가지는 것은 음악하는 친구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라며 “학교 교육보다 더 친구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했다. 예원을 졸압한 친구들이 대체로 서울예고까지 진학하는 상황에서 똑같은 3년은 “반복처럼 느껴질 것”이라는 판단은 지금의 결정에 이르게 됐다. 김주호는 “학년이 올라올수록 누군가의 가르침에 의존하기보다, 음악을 직접 듣는 것이 가장 좋은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중학교 졸업 이후 예고 진학을 할 수도 있었지만, 전서우가 국제학교를 선택한 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음악은 물론 다양한 학습과 운동을 병행,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건강한 환경에서 음악을 하기 위한 결정이다. 현재는 미국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교를 떠났지만, 이들의 음악은 넓어졌다. 클래식의 뿌리 위에서 성장해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음악적 역량을 쌓아가고 있다. 세 사람은 클래식을 ‘보존’해야 할 전통이라기보다, 자유롭게 섞고 확장할 수 있는 언어처럼 다룬다. 아파시오나의 ‘음악 언어’는 아직 첫 장밖에 쓰지 않았다.
아직 주민등록증도 나오지 않은 세 사람은 ‘10대 영재’라는 말 안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세 사람은 “무대 위에 올라가면 나이와 무관하게 다 같은 연주자라고 생각한다”(정현준)고 했다. 그러니 “‘10대인데 잘하네’라는 평보단 ‘좋은 연주였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김주호)는 마음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잘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끼리 재밌는 연주를 만들고 싶다“(전서우)는 바람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 세간의 기준과 무관하게 ‘우리만의 음악’을 해내겠다는 선언이 시작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