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돈 받았다” 고해성사 왜?
한국정치에서 노무현은 도덕성의 상징이었다.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였던 ‘노무현’을 권좌의 정점까지 끌어올린 힘도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주류 세력에 대한 민심의 반감이었다. 2003년 집권하자마자 일부 측근이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도 그는 특유의 언어로 주류 세력을 향해 “그래도 당신들보다는 깨끗하다”고 외쳤다.
그랬던 ‘노무현’이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퇴임 1년여 만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부인 권양숙 여사의 검은돈 거래 사실을 고백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고 사과했다. 위기 때마다 그랬듯이 그는 ‘고해성사’를 통한 정면 돌파라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박연차의 검은돈’을 쫓는 검찰의 칼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게 확인된 이상, 회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탄핵이나 행정수도 위헌 판결 등 위기가 닥칠 때마다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해 국면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엔 그가 최고권력에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자연인이다. 게다가 그의 정적들이 정보와 권력을 쥐고 있다. 이젠 그도 이전 대통령들이 그랬던 것처럼 권력무상을 절감할 때일지 모른다. 그는 지금 아무것도 없던 시절로 되돌아온 것이다. 더욱이 문제는 그의 고백이 전부 진실일 것으로 믿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박 회장 돈을 본인이 아닌 권양숙 여사가 받았다고 한 대목도 그렇고, “조카사위인 연철호가 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퇴임 후 알았다”는 해명도 석연치 않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의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또 어느 수준까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지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 노무현의 집권 당시 부패집단으로 매도당했던 현 여권에서는 요즘 “검찰이 지난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 덮어뒀던 부분까지 끄집어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의 최종 기착지는 ‘노 전 대통령 당선축하금’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점쳤다. 국민은 새로운 정치를 꿈꿨던 ‘친노무현 세력’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에 기회 있을 때마다 철저한 친ㆍ인척 관리를 천명했고, 친ㆍ인척 비리로 얼룩진 과거 정권의 우(愚)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에 더욱 그렇다. 친노의 한 핵심 인사는 “대통령도 (개인) 빚이 있었고, 정치활동하는 데에 돈이 필요했을 걸로 생각한다”며 “답답한 심정뿐이고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결국 스스로 ‘구시대의 막내’라고 했던 ‘바보 노무현’ 역시 구태로 얼룩진 그 시대의 막차를 탄 것이다. 신창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