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소년범죄의 희생양이 되고
단순히 놀이일 뿐이라는 생각
말 · 사고 허용않는 악의 평범성
‘소녀잔혹사’다. ‘소녀잔혹사’를 통해 그리는 한국사회의 그늘이다. 최근 잇따른 한국영화가 소녀들을 사지로 내모는 사회를 성찰하고 있다. 이들 작품에서 깊이 음영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가해자와 방관자들이 만드는 폭력의 고리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과 ‘방황하는 칼날’, 그리고 최근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행진을 하고 있는 독립영화 ‘한공주’, 개봉을 앞둔 ‘도희야’가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에서 십대의 소녀들이 당하는 수난은 끔찍하다. 친구들로부터 은근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고 (‘우아한 거짓말’), 또래로부터의 무자비한 성폭력의 대상이 되거나 (‘방황하는 칼날’), 소년범죄의 희생양이 돼 죽거나 도망쳐야 한다 (‘한공주’).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서 의붓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의 먹잇감이 되기도 (‘도희야’) 한다. 남성과 성인, 사회의 폭력에 방치된 소녀들은 대개는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희생당한다. 최근 국내 극장가를 장악한 미국산 슈퍼히어로 영화의 낙관적이고 활기찬 세계와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한 편에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강한 남성 영웅이 인류를 구해내고, 한 편에선 사회의 최약자인 어린 소녀가 폭력에 신음한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어린 소녀의 죽음 후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혹은 방관자들의 죄책감을 스스로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아버지는 일찍 여의었고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단란하고 씩씩하게 살던 세 모녀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은 이 작품은, 착하고 예쁘고 늘 제 할 일을 똑부러지게 해왔던 여중생 막내딸이 유서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죽은 소녀의 언니(고아성 분)는 죽은 동생이 친구들로부터 암묵적인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아왔으며, 가족에게도 의지하지 못하고 상처와 아픔을 홀로 감당해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해소녀는 “모두가 따돌리지만 그래도 난 그 애와 놀아준다”는 거짓말로 스스로를 합리화했고, 가족은 죽은 소녀에게 무관심했으며, 친구들은 모두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외면했다.
![]() |
| 한국영화 속 소녀들의 수난시대다. ‘우아한 거짓말’ ‘방황하는 칼날’ ‘한공주’ 등 최근작들이 잇따라 소녀들의 희생을 소재로 삼았다. |
일본의 유명한 스릴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방황하는 칼날’은 딸을 잃은 아버지(정재영 분)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아내와 사별하고 애틋하게 키워온 여고생 딸이 어느날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같은 또래 남학생 몇 명에게 유린당한 채 죽은 것이다. 경찰 수사 중 형사보다 한발 앞서 가해자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 아버지는 공범 중 한 명을 찾아갔다가 우발적으로 소년을 죽인다. 피해자, 희생자의 유족에서 ‘살인자’가 된 남자. 그는 또 다른 가해자 소년의 행적을 찾아 나서고, 경찰은 또 다른 범행을 막기 위해 남자를 추적한다. 영화 속에서 소녀는 속절없이 끔찍한 폭력의 희생양이 되지만, 아무도 그 죽음을 책임질 자도, 죽음을 위로할 자도 없다. 그래서 피해자는 살인자가 된다.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영화 ‘한공주’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끔찍한 상처를 안은 소녀가 스스로를 치유해가며 다시 세상으로 발을 내딛으려는 안간힘을 그린 작품이다. 한공주는 끔찍한 소년범죄의 피해자였고, 같은 일을 당했던 소녀의 친구는 자살했으며, 가해 학생들은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도망가야 했던 것은 피해자였으며, 쥐죽은 듯 숨어살아야 했던 것도 아무 죄없는 소녀였고, 지옥을 감당해야 했던 것도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아니라 악행을 당한 이였다.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는 소녀의 외롭고 가녀린 항변과 안간힘에 세상은, 어른들은, 끝까지 묵묵부답이었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61년 이스라엘 비밀경찰들에 의해 끌려와 예루살렘의 법정에 선 나치 전범 하인리히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취재해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유태인 학살범인 아이히만이 ‘악마적인 심연을 가진 괴물’이 아니었으며 평범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그를 엄청난 범죄자로 만든 것은 ‘순전한 무사유’였다고 단언한다. 아이히만은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거나 느끼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으며, 그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무사유야말로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이며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악행을 저지르는 순진무구한 얼굴의 소년들, 친구를 모욕하고 괴롭히면서도 “단지 놀이일 뿐”이라는 소녀들, 오로지 자기 피붙이에게 흠이라도 갈까 벌벌떠는 부모들, 피해자에게 죄를 묻는 가혹한 어른들…. ‘십대소녀잔혹사’에 빠진 한국 영화 속 풍경에 드리운 것은 ‘무사유’의 사회에 대한 근심이 아닐까. 
suk@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