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뒤늦은 사과했지만 부적절 대응·퇴행적 젠더감수성…내년 재보궐선거 후폭풍 우려

[헤럴드경제=최정호 기자]시간도 늦었다. 내용도 부족했다. ‘내용과 타이밍 ’이 생명인 정치적 사과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있다.[연합]

15일 민주당이 공식적인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비롯해 피해자의 고발 정보 불법 유출의혹, 여당 의원 및 친여 인사들의 발언 논란 등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우선 사과 타이밍이 늦었다는 지적이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알려지고 닷새 이상 걸렸다. 그 과정에서 대변인 등을 통해 사과 언급이 나오긴 했지만, 일부 민주당과 친여 인사들에 의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발언이 이어졌다. 여성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내 일각에서 진상조사와 피해자 보호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당 전반의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여론도 민주당에게 부담스럽다. 별도의 특검 또는 조사를 요구하는 야당의 목소리가 힘을 받는 모습이다.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14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 대상 실시, 95%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응답자의 64.4%가 박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이라는 수사 관행에 묻어버리고자 했던 사건 발생 초기 당내 기류가 오히려 여론의 반발만 키운 셈이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더불어민주당 명의의 고 박원순 서울시장 추모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

사후 대책도 교육 감찰 강화 같은 과거 유사 사건 발생 시 발표했던 내용을 되풀이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소속 공직자와 구성원을 대상으로 성인지 교육을 하도록 당규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시 감찰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시도지사 및 지방의회의원들의 사고와 추문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실효성 없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당 내에서는 벌써 내년 4월 재보궐 선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권 경쟁에 나선 김부겸 전 의원은 이날 SNS에 “부산에 더해 서울까지 치러지는 선거”라며 “선거 결과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 마무리나 1년 뒤 예정된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 당헌당규에 불미스러운 일로 당 소속 지자체장이 물러나 보궐선거를 할 경우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조항이 미칠 악영향을 고려,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다.

반면 또 다른 당권 경쟁자인 이낙연 의원은 “아직 말할 때가 아니다”며 답을 피했다. 선거를 피할 수도, 그렇다고 예외를 두며 정면 돌파하기도 쉽지 않은 민주당의 딜래마가 그대로 투영된 모습이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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