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땅에 살면서 한국과 같은 시간, 즉 실시간으로 TV 방송의 뉴스를 시청할 수 있게 된 편리함에 푹 빠져 ‘세상 참 좋아졌다’고 뇌까려 왔다. 24시간 뉴스채널 YTN이 보여준 숭례문 화재의 생생한 현장 화면은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했다.
서울의 밤하늘을 넘실거리며 뻗쳐오르던 시뻘건 불길, 언발에 오줌 누는 꼴이던 소방차들의 물줄기, 급기야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무너져 내리던 누각…. 그 순간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며 두 눈을 질끈 감던 어느 중년 사내의 비통함은 한치 오차없는 동시간에 미국 LA에 있던 우리들 모습과 여지없이 오버랩됐다.
실시간 중계의 편리함이 그토록 불편스러운 고통으로 돌변할 줄이야. 그것은 잠자리를 짓누르던 가위눌림의 악몽이 생시에 그대로 되살아난 끔찍함이나 다름없었다.
숭례문 화재 관련 소식과 정보가 어느 정도 입력된 뒤 준비된 마음으로 녹화장면을 보았더라면 좀 나았을까. 그랬더라면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도, 머리가 터져버릴 듯한 분노도 그런대로 삭혀진 채였을테니 말이다.
좋은 일, 아름다운 장면만 담아내기에도 버거운 백일몽 인생이다. 뭐 그리 급하고 요긴했겠는가.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처참한 사태를 뭣하러 실시간으로 목도해야 하는 것인가 말이다. 시공을 메꿔버린 첨단화된 문명이 원망스러웠다.
그랬다. 610년의 역사가 잿더미로 바뀌는 현장을 리얼타임으로 지켜본 감정의 파편은 그렇게 엉뚱하게 튀었다. 아무 잘못없는 위성방송 시스템을 탓하다니, 어디 제 정신인가? 하기야 TV화면에서 숭례문이 무너져 내리는 찰나 우리 모두는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 말기의 기강해이 탓이라고 손가락질이다. 통합신당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시장 시절 숭례문 개방을 밀어붙인 결과라고 맞선다. 문화재청장은 “내 탓이오”라면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할 말 다 하고 있다.
실컷 두들겨 패주고도 분이 삭지 않을 작태들이다. 물론 원인을 캐내고 책임을 묻고 대책도 세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만은 다른 재난과 재해를 다루듯 천편일률적인 과정과 절차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1398년부터 2008년까지 꼬박 610년이다.
엄청난 역사의 성상(星霜)을 절대로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그 문을 드나들었던 수천만, 수억에 이르는 민족과 민중의 발길, 눈길을 잠시만이라도 생각해보자. 이번 참사를 도식적인 책임공방과 사후약방문으로 또 그렇게 기억과 시간의 저편으로 흘려보낸다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정체성을 장담할 자격이 없다.
명분과 원칙만을 고집한 자, 실리와 실용이 최선이라고 외친 자, 그도 저도 아닌 쪽에서 팔짱 끼고 있던 자, 어느 편이든 숭례문 참화의 비극에서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잘못이라는 얘기다.
역사를 가벼이 여겼고, 그 유산의 의미를 안중에 두지 않았으니 말이다.
벌써부터 복원작업을 말하고 있다. 아니다. 복원이 급하지 않다. 숭례문 화재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 그을린 기와 한장 건드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 불과 다섯시간만에 우리의 영혼과 정신의 고향이 불에 타버렸다. 누가 흉물이라고 하는가. 보기 싫어도 볼 수 밖에 없는 그 자리 그 곳에 숭례문 화마의 현장을 간직해둬야 한다.
잊혀질 만하면 맞딱뜨리게 해서 소스라치게 놀라 또 우리를 자책하고 반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우리 스스로를, 서로가 서로를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그래야 한다. 통곡은 울다 울다 지쳐서 절로 끝나야 한다. 억지로 멈추게 하면 그 포한은 평생 가슴에 남는다. 지금 우리는 통곡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
황덕준/발행인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