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숙련된 장인들의 대하드라마…사극 트렌드도 바꾼다 ★★★
정진영=대하드라마 ‘선조’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정통사극에 단련된 장인들은 또 한 번 선 굵은 정치드라마로 돌아왔다. ‘광복 70주년 특집’이라는 거창한 수사가 따라온 KBS 1TV ‘징비록’이다.
지난해 오랜만에 부활한 정통사극 ‘정도전’에 이어 일년여 만에 다시 안방을 찾은 드라마는 시작 전부터 화제였다. ‘징비록’ 제작이 알려지자 그 인기는 서점에서 먼저 확인됐다. 지난해 6월 이후 ‘징비록’ 관련 도서는 소설, 연구서, 청소년 도서에 이르기까지 10여권을 훌쩍 넘긴다. 사전 인지도에 비한다면 8회까지 방송한 현재, 안방의 관심은 저조한 편이다. 9~1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시청률 상승을 위해 주부 시청자가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제작진의 바람도 나온다. 이와는 달리 드라마는 ‘정도전’ 때와 마찬가지로 40대 이상 남성층의 관심이 압도적이다. 특히 60대 남성층의 평균 시청률은 1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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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KBS] |
조선 왕조의 가장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인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징비록’은 두 가지 면에서 기존 사극과 다른 지점에 놓인다. 왕조 중심의 사극에서 재상 중심의 사극으로 변화했다는 점, 우리의 입장에만 충실했던 데에서 동아시아의 정세를 함께 담았다는 점이 그 두 가지다. 트렌드의 변화다.
지난 10일 경기도 수원 KBS 드라마제작센터에서 만난 김상휘 PD는 “그동안의 대하드라마가 땅을 넓히기 위한 정복군주 이야기를 통해 윗사람들의 정치를 그렸다면, ‘징비록’은 ‘정도전’과 함께 재상 시리즈로 불릴 만한 드라마”라며 “이들의 정치이야기를 그리는 과정에서 왕과 대적할 수 있는 신하의 대표적인 인물은 여말선초의 정도전과 조선시대 가장 큰 위기를 살아낸 류성룡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4일 첫 방송된 ‘징비록’은 1604년 류성룡이 토혈을 하면 ‘징비록’을 집필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했다. ‘꾸짖을 懲, 삼갈 毖‘, ‘시경’을 따온 제목의 이 기록은 전쟁(임진왜란)의 참상을 다시 반복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내려간 서애 류성룡의 ‘피로 쓴 교훈’이다. 그 중심에서 류성룡은 “무너진 나라를 재건한 재상”으로 그려지며, 시청자가 미처 알지 못한 역사 안에 숨은 인물들도 재조명한다. 선조 역시 “나라를 버린 왕“이라는 기록 이전에 ”도망갈 수 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구현하겠다“는 것이 그를 연기하는 배우 김태우의 생각이다.

임진왜란 3년 전 조정에서 동인과 서인의 갈등을 담는 것으로 첫 회를 시작한 ‘징비록’은 조선 최대 국난이 발발한 원인과 전시의 외교협상을 면밀히 다루기 위해 한중일 삼국의 분량이 적절히 분배됐다. ”NHK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김태우)거나, ”일본 쪽이 멋있게 나와 조선인들의 불만이 나온다“(김상휘 PD)는 게 현장의 목소리일 정도다.

김 PD는 “기존의 사극이 일본을 다룬 것과 차별화해 세트와 의상에 힘을 줬다”며 “임진왜란은 한중일이 긴밀하게 얽혀들어간 국제전이었고, 전쟁기간 중 5년은 소강상태로 정전 협상이 주를 이뤘다. 그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과 명나라의 캐릭터를 미리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단순히 전쟁광이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도요토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에 도움이 되는 주변인물의 비중이 커졌다. 그의 아들 츠루마츠가 대표적이다.

제작진이 역동적인 일본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에 공을 들인 것은, ‘전시 재상’으로서 류성룡의 외교전에 방점을 두기 위한 의도였다. 하지만 조선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는 만큼 ‘징비록’은 굵직한 사건들로 초반 기세를 잡았던 여느 대하드라마에 비한다면 다소 심심한 그림이다. 특히 평생을 청빈하게 살며 학문에 전념하고자 했던 정적인 인물 류성룡은 주변인물들에 비해 폭발력이 부족해 시청자들의 감정을 쉽게 흔들지 못하고 있다. 류성룡을 연기하는 배우 김상중은 “‘징비록’은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은은하게 흘러가는 힘을 가진 드라마다. 낙차가 큰 물길을 만날 때 소용돌이를 치고 물살이 빨라지듯이, 차자 본심은 충분히 보여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도 “감정의 진폭없이 선조바라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류성룡을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다만 “류성룡은 ‘민본은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백성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어떻게 나라가 움직여야할 것이지는 생각한 선견지명이 있는 인물”이라며 “정중동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50회 중 8회가 방영됐고, 임진왜란은 본격적인 막을 올리지도 않았다. “여전히 캐스팅 중”이라는 성웅 이순신도 등장하고, 다음달 13일 임진왜란 발발 423주년의 유사 국치일 즈음엔 왜군의 침입 장면이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예스맨’ 류성룡과 선조의 갈등은 골이 깊어지고, 전쟁을 통한 에피소드의 숫자는 늘어난다. 김상휘 PD는 “정사에 충실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교육적 재미와 오락적 재미가 함께 나오는 것이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정보는 드리되 강요할 수는 없다. 보면 느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도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를 꿈꾸고, 끔찍한 절망을 겪고 난 2015년 현재에도 역사를 거울로 삼지 못하는 우리를 반성하며, 대하사극의 따끔한 질책을 들을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재상들을 찾을 지도 모르겠다. 류성룡이 적은 ‘징비록’의 서문이 그렇다. “백성들은 떠돌고 정치가 어지러워진 때에 나 같은 못난 사람이 나라의 중책을 맡아 위기를 바로잡지 못하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떠받치지 못하였으니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