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의 무비 for U] 살아있는 모든 것은 행복하라, ‘화이트갓’

‘살아있는 모든 것은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 ‘법구경’과 함께 일반에 널리 알려진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입니다. 행복하고 평안해야 할 생명체들이 인간의 이기심으로 희생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합니다. 최근엔 이웃의 개를 납치해 생식기를 자른 끔찍한 사건부터, 학대 당한 개의 몸에서 세 발의 총탄이 발견된 일이 있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선 여자친구의 애완견을 상습적으로 구타한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죠.

생명의 존엄성을 모르는 이들을 겨냥한 영화 한 편이 등장했습니다.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2관왕(‘주목할만한 시선 대상’·‘팜 도그 대상’)에 빛나는 ‘화이트갓’(감독 코르넬 문드럭초)입니다. 순종이 아닌 잡종견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헝가리의 정책 때문에 애완견 ‘하겐’은 하루아침에 거리에 버려집니다. 소녀 릴리는 하겐을 거리로 내몬 아버지를 증오하며 자신의 애견을 찾아 나섭니다. 그 시각 하겐은 유기견 보호소 직원들에게 쫓기고 노숙자에게 이용 당하고 투견으로 훈련받는 등 갖은 고초를 겪습니다. 가까스로 인간의 손에서 벗어난 하겐은 유기견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역습을 시작합니다.

개들이 펼치는 복수극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닙니다. ‘화이트갓’은 인간 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 이상으로 긴장감과 공포심을 유발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겐을 매매하고 때리고 약물을 주입한 인간들은 차례로 죽음을 맞습니다. 이들의 시체 앞에서 피를 뒤집어쓴 하겐의 모습은, 순진무구한 눈빛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비애를 자아냅니다. 특히 수백 마리 유기견들이 부다페스트 거리를 내달리는 장면은 시선을 압도하며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립니다.

‘화이트 갓’의 더욱 놀라운 점은 컴퓨터그래픽(CG)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실제 개 250여 마리를 동원해 영화를 완성한 점입니다. 개들을 훈련시키는 데만 6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문드럭초 감독은 개들을 위한 영화를 찍으며 이들을 괴롭히는 역설을 피하기 위해, 가학적인 훈련이 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했다고 합니다. 또 개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인간을 담기 위해 카메라의 시선은 수시로 하겐의 시선으로 대체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한동안 관객들의 가슴에 남을 최고의 그림이 되리라 예상합니다. 카메라는 릴리가 바닥에 엎드린 채 하겐과 눈을 맞추고, 하겐을 뒤따르던 개들도 차례로 자리를 잡고 앉으며 이들의 폭동이 일단락 된 모습을 부감(high angle)으로 잡아냅니다. 성난 개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건 물리적인 진압이 아닌 인간의 따스한 시선이었죠. ‘화이트갓’은 극 중 카메라처럼 하겐의 시선에서, 극 중 릴리처럼 하겐의 눈높이에서 그들을 한 번 봐달라고 말합니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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