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니까 이 영화①] 어색한 친척, ‘아이스브레이킹’엔 이거

[헤럴드경제=고승희ㆍ이세진ㆍ이은지 기자] 어릴 적엔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던 친척들이 각자 스마트폰만 보며 흩어져 있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엔 친척들 보기도 어려운데 이대로 또 흩어지면 내년엔 더 어색한 명절이 될 게 뻔하다. 빨리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 분위기를 띄우고 어색함을 깨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로 모을 비장의 무기가 필요하다. 될 수 있으면 명절 첫째 날 꺼내서 풀어놓자. 부드러워진 분위기의 친척집에서 즐거운 시간만 보낼 수 있게 말이다.

‘찰나의 평화’…‘허공에서의 질주(Running on Empty)’(방송/대중음악 담당 고승희)=어린 리버 피닉스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어른들에겐 향수다. 1988년 작품으로, 시드니 루멧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1971년 네이팜탄 투하 반대 시위의 일환으로 군사 실험실을 폭파하다가 FBI에 쫓겨 15년간 도피생활을 해온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6개월에 한 번씩 이름과 머리, 눈동자 색깔까지 바꾸며 도망다녀야 하는 사춘기 아들. 한창 나이에 여자친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상황 앞에서 불안한 미래를 약속할 수도 없다. 불행 속에 피어난 사랑과 재능은 절망이다. 설상가상 피아니스트로의 재능까지 인정받는다. 살기 위해 모든 걸 버려야 하고, 미래를 기약할 수도 없는 이에게 주어진 형벌이다. 영화의 갈등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생긴 틈이다. 영문도 모른 채 ‘좋은 아들’이 돼 어느 곳에서도 정착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던 사춘기 소년은, 그의 삶에 대한 희망을 품기를 갈망한다. ‘허공에의 질주’는 그 잔잔한 평화를 그리면서도 하염없이 달려야 하는 사람들의 불안과 긴박감을 놓치지 않는다. 이 영화 속 최고의 장면은 이들 가족과 여자친구가 다 함게 춤을 추는 장면이다. 찰나의 평화. 영화가 끝나면 시들해졌던 가족애가 생길 지도 모른다. 

사진= 태풍이 지나가고]


폭소유발 할머니 ‘태풍이 지나가고’(영화 담당 이세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 영화의 달인이다. 데뷔작 ‘환상의 빛’부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어딘가 상처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따듯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그의 최신작인 ‘태풍이 지나가고’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변화를 보여 준 작품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폭소가 터져 나온다. 웃겨서 배꼽을 잡다가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한다. 할머니 요시코(키키 기린) 때문이다. 
사진= 허공에서의 질주]


아내와 이혼하고 흥신소에서 일하는 아들(아베 히로시)을 “열매는 열리지 않아도 나무에 물을 주는” 것처럼 보듬는 이 할머니는 포근한 우리 할머니 같기도, 우리 엄마 같기도 하다. 노인들만 남은 낡은 연립아파트에서 혼자 살지만 신세 한탄보다는 매주 베토벤, 모차르트를 듣는 클래식 모임에 나가기도 하면서 노년의 삶을 즐기는 할머니 모습에 웃음이 지어진다. 명절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집을 찾아온 아들과 이혼한 며느리, 손자까지 찾아오자 태풍을 핑계로 하룻밤 자고 가라고 조른다. 하룻밤 사이 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할머니의 귀여움에 웃다가, 가족의 따듯함에 녹아드는 명작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기도 했다.

▶미국 영화 ‘스파이’? 한국 영화 ‘스파이’도 있다= 영화 ‘스파이’라고 하면 보통 작년 5월 개봉한 주드 로와 멜리사 맥카시 주연의 미국 영화를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도 ‘스파이’가 있다. 그것도 2013년 9월 추석 연휴에 개봉한 추석 저격 ‘가족 코디디 영화’다.

설경구와 문소리가 철수와 영희 로 부부 호흡을 맞췄다. 2세를 만들기 위해 받아 놓은 날, 의문의 테러가 발생해 국정원 요원 김철수(설경구)는 태국으로 출장을 간다. 그런데 그 곳에서 스튜어디스인 자신의 아내 영희(문소리)를 목격하게 된다. 심지어 모든 작전지 마다 잘생긴 의문의 사나이 라이언(다니엘 헤니)과 함께 나타나 철수의 애간장을 태운다. 영희는 남편이 국정원 요인이라는 걸 알리 없다. 화가난 영희는 비행 스케줄을 바꿔 태국으로 남편을 쫓아가지만 우연히 만난 라이언에 푹 빠지게 된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면서도 정체불명의 남자로부터 아내를 구해내려는 철수의 고군분투와 함께 부부 간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따뜻한 가족애를 그린다. 여기에 각종 액션으로 볼거리를 늘리고 코미디로 웃음까지 선사하는 한국판 토종 첩보 액션 영화다.

사진=스파이]


국가의 운명이 달린 미션, 과연 철수는 나라도 지키고, 아내도 지킬 수 있을까. 모든 연령이 공감하며 웃을 수 있는 가족 코미디, 어색한 거실에 추천한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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