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11의 디스플레이를 탈거한 모습 [유튜브 공대뚝딱이]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전자기기를 스스로 고쳐 쓸 수 있는 ‘수리할 권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애플은 여전히 한국 시장에 자가 수리 프로그램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국내에서 소비자가 스스로 휴대폰을 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3일 애플은 유럽 24개국에 자가 수리 프로그램을 출시했다. 2021년 말께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애플은 총 33개 국가에서 24개 언어로 대상을 늘려왔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12월 20일 유럽 30개국에 자가 수리 프로그램을 추가 도입했다. 미국(2022년 8월)을 시작으로 한국(2023년 5월) 등 42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갤럭시Z플립5 자가수리 영상 [유튜브 삼성전자서비스] |
자가 수리 프로그램은 휴대폰 제조사에서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수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부품과 도구 등을 판매하는 걸 일컫는다. 기존에도 암암리에 사제로 교체를 할 수 있었지만 정식 부품을 사용하지 않아 이상이 생기더라도 소비자에 책임을 지웠다.
소비자가 스스로 수리를 할 경우 가장 큰 이점은 가격을 수십 만원씩 아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폰15프로맥스의 경우 공인 수리 비용은 55만9000원이다. 반면 자가 수리 키트 가격은 한화 6만3000원(49달러) 로 50만원 차이가 난다.
특히 애플의 경우 지난해 3월 한국에서 수리 비용 43% 인상한 바 있다. 미국과 영국(29%), 일본(31%)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애플 홈페이지] |
휴대폰 교체 시기를 늘리면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유럽환경국의 연구에 에 따르면 유럽의 모든 스마트폰을 1년 씩만 더 사용하면 2030년까지 해마다 210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이는 연간 100만대 이상의 자동차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에 맞먹는다.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제품의 수명을 늘리려면 원하는 소비자는 스스로 수리를 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게 최근 국제 사회의 흐름이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이미 소비자가 전자제품을 수리할 권리가 법률로 정해졌다.
특히 프랑스는 수리 매뉴얼과 난이도, 부품 공급과 가격 등의 세부 사항에 따라 1~10점까지 점수를 매기는 ‘전자제품 수리 가능성 지수’를 도입하는 등 전자제품 수리를 장려하고 있다.
금속 더미와 오래된 전자제품 쓰레기들 [블룸버그] |
한국에서도 수리권을 보장하는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이 2025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보증 기간 내 부품을 확보하고 배송하는 정도에 그쳐, 해외 대비 자가 수리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환경단체들은 ▷기업이 수리가 쉽도록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하도록 의무화 ▷소비자가 수리 방식 및 업체를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 보장 ▷소비자가 제품을 쉽게 수리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 의무화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정식 부품을 받는 정도로는 비전문가인 소비자들이 수리하기 쉽지 않아서다. 녹색연합이 지난해 10월 1~10일 106가구를 대상으로 ‘전기·전자제품 수리에 어려움을 느끼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1%는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41%는 ‘때때로 느낀다’고 답했다.
[유튜브 ITsub] |
이외에 정해진 기간, 업체에서 수리를 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했다. 서울환경연합이 지난해 10월 16~18일 ‘기업의 수리 서비스 독점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00명 중 27.2%가 ‘보증 기간 이후 수리 서비스 이용 불가’를 지목했다. 4.2%는 ‘사설 업체 이용 후 공식 서비스 센터 이용 제한’이라고 답했다.
스스로 수리할 경우에는 ‘수리를 위한 설명과 설계도를 제공하지 않는다’(5.5%), ‘수리가 어렵게 설계됐다’(4.6%)는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가장 큰 문제는 ‘제품 가격보다 높은 수리 비용’(48.4%)으로 가격이었다.
허혜윤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 활동가는 “자가 수리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소비자들이 수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등 구체적인 법령이 제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