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NLL)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우리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을 균열시키기 위한 정치 도발 행위”라며 “정부는 실시간으로 안보상황을 합동 점검하면서 대비태세를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연말 제8기 제9차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것과 관련해서는 “북한 정권 스스로가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 집단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전쟁이냐 평화냐’를 협박하는 재래의 위장 평화 전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도발 위협에 굴복해 얻는 가짜 평화는 우리 안보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뿐”이라고 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연말 전원회의에서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나가야 한다”고 밝힌 이후 대남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5~7일 사흘 연속 서해상에서 포사격을 실시했고, 14일에는 극초음속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하는 등 무력도발 수위도 높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8~9일 중요군수공장 현지지도에서는 다수의 근거리형 전술유도탄을 공개하면서 “조선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고 위협했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는 “한국 총선과 미국 대선 국면을 염두에 두면서 북한이 관심을 끌기 위해 일종의 ‘블러핑’을 하는 측면도 있지만, 최고지도자가 남북 관계를 교전상태로 규정하고 대한민국을 점령, 평정, 수복한다고 하면 군부는 정말 그렇게 준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굉장히 위험수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지시했고,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인 경의선의 북측 구간을 “회복불가한 수준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놓는 것”, 평양의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철거 등 대책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공화국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폐지를 가결했다. 앞서 북한은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등 대남기구를 정리했고, 대남 국영 라디오 ‘평양방송’도 중단됐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은 “남한과의 철저한 단절과 적대의식을 고조시키는 것은 주민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통일에 대한 환상, 남한과의 교류협력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의도”라며 “전쟁분위기를 최고조로 부각시키는 것은 사실상 배수의 진을 치고 내부결속과 내부자원을 총력 집중시켜 핵무력에 의한 전쟁억제력 강화와 함께 경제발전과 민생개선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적 노림수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미국의 방대한 핵전략자산, 추종세력을 규합해 역대 최대규모로 벌리는 전쟁연습, 미국의 사촉속에 강화되는 일본, 대한민국의 군사적 결탁 등은 우리 국가의 안전을 각일각 더욱 엄중하게 해치고 있다”, “오늘 중동에서 벌어지는 무차별적인 전쟁의 참화를 남의 일로만 여기지 말아야 한다”며 자위적 국방력을 강조했다.
유럽에서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에서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상황에서 미중 패권경쟁까지 불안정한 글로벌 정세를 틈타 전략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다지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15일부터 사흘 간 러시아를 방문해 외무장관 회담을 하고 북러 간 무기거래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논의한다.
조성렬 경남대 교수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겨냥한 연합 전선 구축을 공식화했기에 미국이나 한국과는 더 이상 관계가 없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미뤄왔던 부분들을 공식화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미일이 북한을 겨냥해서 유엔사를 이른바 ‘재활성화’하고, 통일부 내에서 남북 교류 협력하는 부처들을 없애면서 북한도 거기에서 맞춰서 자신들의 틀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