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카바코스 “사회는 하나의 오케스트라…서로를 잘 들어야 좋은 사회”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롯데콘서트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바이올린, 첼로부터 플루트, 팀파니까지 50~120명. 10여 개의 악기를 다루는 다양한 얼굴들이 모여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음악을 만들어간다. 보통 하나의 공연을 올리기 위해 이들에게 주어진 리허설 시간은 평균 3일. 음악계 관계자들은 “아무리 최고의 악단이라도 리허설 첫날은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음악이 나온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3일 뒤엔 음악은 달라진다.

“저마다 음악 공부를 한 개개인이 모여 조화롭고 아름다우면서도 설득력을 가진 음악적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죠. 자기 자신만을 위한 연주를 한다면 이런 결과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어요. 전, 사회는 하나의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해요.”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57)는 최근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198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 1988년 파가니니 콩쿠르와 나움부르크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세계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그는 그라모폰(1991년 ‘올해의 협주곡상’, 2014년 ‘올해의 음악가상’)을 두 번이나 거머쥔 음악가이기도 하다. 내년부턴 롯데콘서트홀이 여는 클래식 음악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의 예술감독으로 함께 한다.

전 세계 수많은 도시에서 해마다 무수히 많은 음악축제가 열리고, 모든 페스티벌이 저마다의 주제를 정해 다양한 음악가들을 앞세워 관객을 끌어모은다. 축제의 색깔과 방향성은 예술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올해 ‘클래식 레볼루션’에는 카바코스의 음악관이 지문으로 새겨졌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롯데콘서트홀 제공]

카바코스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공존’을 꼽았다. 그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연주하는 것이 좋은 오케스트라이듯,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며 “이것이 ‘클래식 레볼루션’의 기본 방향성”이라고 말했다.

1991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담은 데뷔 음반으로 그라모폰상을 수상한 이후 그는 스무 장이 넘는 음반을 냈다. 바흐, 베토벤, 파가니니, 브람스, 쇼스타코비치, 모차르트, 멘델스존, 에네스쿠&라벨, 이자이 등 연주한 음악의 작곡가들 면면도 다양하다.

그는 “음악가로서 삶을 되돌아보면 늘 새롭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배웠고, 새로운 것을 익힐 때마다 기존의 것을 재배치, 재배열하게 된다”며 “마치 하나의 건물이 여러 작곡가의 곡들로 이뤄지고 그 곳에 새로운 음악이 입주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의 안에선 새롭게 학습하는 곡들이 기존의 것들과 함께 쌓이고 섞이며 다채로운 음악성으로 진화한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받는 관대함은 저에겐 중요한 화두이자 표준이 되는 가치예요. 여러 작곡가들의 음악은 각기 다른 모양과 형태의 나무이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자화상이라고 생각해요. 공존을 이야기하는 이 음악들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체임버 음악, 오케스트라의 본질이에요.”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롯데콘서트홀 제공]

‘클래식 레볼루션’은 특정 작곡가를 테마로 삼아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카바코스가 내년 축제에서 조명할 작곡가는 바로크 음악을 상징하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구소련 시대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다. 특히 오는 2025년은 쇼스타코비치의 서거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바흐는 인간이 쓴 음악 중 가장 완벽한 음악을 만든 작곡가로, 인간과 신의 대화를 음악을 통해 들려줬다”며 “반면 쇼스타코비치는 인간의 고통을 대변하는 음악을 썼다. 소비에트 체제로 인한 우울함, 인간의 미숙함에서 오는 불안이 음악에 담겨 우리 시대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작곡가”라고 소개했다.

이번 축제를 함께 한 연주자와 레퍼토리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음악을 통해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공존의 가치, 공동체의 의미를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성공적인 메신저를 초청할 것”이라고 했다.

클래식 레볼루션을 통해 카바코스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명확하다. 그는 20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두 작곡가를 통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가치와 음악을 선사하려 한다”며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았던 두 작곡가와 두 세계를 연결해 내 삶의 좌표를 되돌아보고 그 안에서 지금도 유효한 나와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콘서트를 하면서 유명해지거나 많은 박수를 받거나 좋은 리뷰를 받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가 중요하죠. 그리고 그 음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달하고 관객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 지가 중요해요. 이전엔 느끼지 못한 감동과 감정을 느끼는 것, 그것을 안고 집에 돌아가는 경험을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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