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비즈] 호주 진출 우리 기업, ‘원주민 비토’ 대비해야

1788년 1월 26일. 영국의 해군 대령 아서 필립과 대원들이 시드니 포트 잭슨(Port Jackson)에 상륙하기 훨씬 전부터 호주 땅에는 원주민이 살았다.

2021년 호주 인구 컨세서스에 따르면 애보리진과 토레스 해협의 주민 등과 같은 원주민은 약 100만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원주민이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땅만 해도 호주 전체의 16.2%로, 이 면적은 대한민국 크기의 12배나 된다.

호주 진출 및 투자에 관심 있는 기업이라면 이들에 대해 단순히 ‘현지 관광할 때 전통 악기를 불고 있는 원주민이구나’ 하고 지나칠 일이 아니다.

일례로 호주의 노던 테리토리(북주 준주) 지역은 약 45%가 원주민 소유 혹은 관리 하의 땅이다. 해당 지역에서 최근 우리 기업이 참여한 LNG(액화천연가스) 가스전 프로젝트가 원주민의 소송을 받아 사업에 차질이 생긴 바 있다.

티위 제도 원주민들은 제도에서 140㎞ 떨어져 있는 가스전의 송유관에 대해 “티위 제도 앞을 지나기 때문에 거주지 인근 해양 환경에 피해가 갈 수 있고, 이 사실에 대해 고지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호주 재판부는 ‘해양 석유 및 온실가스 저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당 사업이 티위 제도 원주민을 포함한 이해관계자의 협의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이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원주민과의 지속적인 협상 및 수정 계획 끝에 프로젝트를 재개할 수 있었으나, 프로젝트 운영자인 호주 기업은 최대 4000억원의 추가 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호주 최대 석유 및 가스회사인 우드사이드 에너지도 최근 원주민 소송 문제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2023년 10월 호주 연방법원은 ‘국립 해상 석유 안전 및 환경 관리 기관(NOPSEMA)’이 서호주 스카버러 가스전의 지진탐사 프로그램을 승인한 것에 무효 판결을 내렸다.

소송을 제기한 원주민 단체 측은 “가스 배출이 기후 변화를 악화시키고 인근 지역의 원주민 암벽화를 손상시킬 것이며 사업 운영자가 이해관계자인 원주민 단체와 적절한 협의를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 전날 우드사이드사는 “프로젝트 중단 시 즉각적이고 상당하며 회복 불가능한 경제적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이후 우드사이드사는 NOPSEMA로부터 새로운 승인을 받아 가스전 프로젝트를 재개할 수 있었지만, 원주민과의 협의와 프로젝트 지연으로 추가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다국적 호주 광산기업 리오 틴토 역시 노던 테리토리 내 우라늄 광산 개발을 지속적으로 반대하던 미라르족과의 이슈에 대해 “미라르족의 승인 하에서만 광산을 개발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한 후 사업을 진행했고, 지금은 광산 수명이 다해 원주민 땅의 회복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다.

이 외에도 호주 내에서 에너지·건설·인프라 등의 프로젝트 개발 시 사업 초반에 고려하지 못한 원주민 반대와 협의 비용으로 골머리를 앓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 호주 개발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우리 기업이라면 원주민 협의 이슈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고려하고, 이 문제를 더 이상 복병처럼 만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여빈 코트라 시드니무역관 과장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