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사망설에 유동성 위기론까지… 쏟아지는 가짜뉴스에 재계 속앓이

근거없는 가짜뉴스 확산 피해 일파만파
총수·기업 겨냥한 음모론에 주가 요동
“사이버레커 주1~2일 이상 시청” 26.5%

“개인명예·브랜드 이미지·기업가치 훼손”
피해 회복 어려워…“플랫폼 책임 강화”




#. 지난 주말 유튜브에는 ‘롯데, 공중분해 위기’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등장했다. 롯데의 차입금이 39조원에 달하는데 당기순이익은 1조1000억원에 불과해 빚을 갚을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요지다. 곧이어 해당 영상을 요약한 듯한 이른바 ‘지라시’도 급속도로 퍼졌다. 지라시는 한술 더 떠 내달 초 모라토리엄(지급유예) 선언설과 직원 50% 이상을 감원할 것이란 내용까지 담았다. 이 여파로 롯데지주,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등 롯데그룹의 상장계열사 주가가 일제히 곤두박질 쳤다. 이후 하루 만에 롯데그룹주는 회복하긴 했지만 52주 신저가 홍역을 앓는 등 가짜뉴스가 그룹에는 적잖은 부담을 안겼다.

#. 지난 6월에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건강이상설과 사망설이 일파만파로 퍼지며 일부 계열사 주가가 급등하는 일이 발생키도 했다. 특히, 현대차 지분을 21% 이상 보유해 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인 현대모비스의 경우 장중 한때 주가가 무려 14.45% 오르기도 했다. 현대모비스는 당시 공시를 통해 “상기 풍문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심지어 정 명예회장을 둘러싼 사망설은 처음이 아니다. 2020년 정 명예회장이 대장게실염으로 입원했을 당시에도 사망설이 나왔지만 4개월 만에 완치 판정을 받고 건강하게 퇴원했다.

최근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동영상 플랫폼에 기업인을 표적으로 하는 가짜뉴스가 쏟아지면서 재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OOO 회장 해임안 통과’, ‘OOO 회장 젊은 여성과 재혼 발표’, ‘대통령이 OO기업 회장 구속수사 긴급지시’ 등 명백한 허위사실들이 온라인상에서 사실인 양 유포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유튜브 가짜뉴스의 경우 기업 주가나 신뢰도 등에 즉각적인 타격을 입힐 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인과 기업, 주주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이번 유동성 위기설에 대해 롯데그룹은 21일 설명자료까지 배포하며 해명에 나섰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기준 총자산은 139조원, 보유 주식 가치는 37조5000억원에 각각 달한다”며 “그룹 전체 부동산 가치는 지난달 평가 기준 56조원, 즉시 활용 가능한 가용 예금도 15조4000억원을 보유하는 등 안정적인 유동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룹의 ‘살림’을 세세하게 공개하며 시장 우려 잠재우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그룹 전반에 걸쳐 자산 효율화 작업과 수익성 중심 경영을 진행한다”고 했다. 회사채 재무특약 위반이 발생한 롯데케미칼 역시 충분한 유동성이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업황이 안 좋지만 현재 에셋라이트(자산 경량화) 작업을 하고 있고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을 청산하는 등 기초자산을 활용해 1조4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해 재무 건전성을 제고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불분명한 설(說)로 인해 주가가 급등락하며 기업이 흔들리고 있는데 이는 투자자는 물론 시장 전반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룹 회장과 기업을 둘러싼 가짜뉴스에 시달린 것은 롯데그룹과 현대차그룹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도 검증되지 않은 소식으로 수차례 곤욕을 치렀다. 지난 5월 로이터는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이 엔비디아의 품질테스트 통과에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한 달도 채 안 돼 오보로 밝혀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월 초 열린 대만 컴퓨텍스에서 “사실이 아니다, 어떤 이유로도 실패가 아니다”고 직접 반박했다.

이후에도 HBM에 관한 루머와 오보가 반복되면서 주주들의 신뢰는 크게 하락했다.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통과에 대한 소식이 나올 때마다 삼성전자 주가는 등락을 반복하며 요동쳤다. 주주들 사이에서는 “매번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무엇이 진실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6월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의 웨이퍼 생산과정에서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결함이 발생했다는 루머도 돌았다. 일부 매체가 이를 기사화까지 하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반도체 실적 부진으로 시작된 ‘삼성전자 위기’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두고 유튜브 등에서 온갖 설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트로트 가수 홍진영과 결혼한다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를 퍼트린 한 유튜버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SK그룹 역시 유튜브 가짜뉴스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해임설, 구속설 등 각종 루머의 표적이 됐다. 지난 8월에는 김슬아 컬리 대표가 ‘해외로 도피했다’는 근거 없는 루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유튜브 등 동영상플랫폼은 조회수가 곧 수익으로 연결되다보니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을 이용하면서 허위사실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그룹 회장을 겨냥할 경우 보다 손쉽게 사용자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이 가짜뉴스의 단골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군다나 유튜브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꼽히는 만큼, 가짜뉴스가 등록됐을 때의 파급력도 어마어마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애플리케이션·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를 표본 조사한 결과 지난 8월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한 앱은 유튜브로, 한 달 동안 총 사용시간이 1174억분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올해 2월 20~50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1.4%는 ‘돈벌이’를 좇아 허위·비방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이버 레커’ 콘텐츠를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들 콘텐츠 시청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주 1~2일 이상 시청한다는 응답도 26.5%(매일 3.3%, 주 5~6일 2.1%, 주 3~4일 7.7%, 주1~2일 13.4%)에 달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유튜브 등에 기업 이름만 검색해 봐도 허무맹랑한 게시물이 여과 없이 퍼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이는 개인의 명예는 물론 브랜드 이미지와 기업 가치까지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유튜브 가짜뉴스를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가짜뉴스가 유튜브에 등록되더라도 대응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일단 콘텐츠 제작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고, 신원이 특정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집행유예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정도로 낮다. 기업 입장에서는 손해배상 소송 등에 나서더라도 가짜뉴스의 확산을 막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짜뉴스에 기반을 둔 사람들의 인식까지 회복시키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토로다.

정부나 국회서도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규제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악의적 가짜뉴스를 막기 위한 각종 법안들이 매번 국회서 발의되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이나 정치적 논쟁에 휩싸여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 상태다. 플랫폼의 책임과 자율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수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해외 기업인 유튜브의 경우 콘텐츠 제재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진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는 “현재는 플랫폼에 가짜뉴스 유통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 규정이 미흡하고 사법부에서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 외엔 플랫폼의 책임 인정에 소극적”이라며 “가짜뉴스에 대한 유통책임을 유튜브 등 플랫폼에 부과하고 허위조작정보, 가짜뉴스를 필터링할 인공지능(AI) 기술 도입 장려, 세제·보조금 등 다양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윤희·김은희·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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