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삼아 파낸 무덤인데” 국보급 유물 우르르…50년전 그날의 ‘천마’

천마도가 출토되면서 155호분이라는 숫자로 불리던 무덤이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1973년 발굴 당시에만 해도 경주 황남동 대릉원에 있는 천마총은 ‘155호분’이라는 고분 번호로 불렸다. 1971년 수립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정부는 경주 시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분인 ‘98호분’, 그러니까 오늘날의 황남대총을 발굴하려 했다. “저 산 같은 무덤을 미쳤다고 발굴해!” 그러나 문화재관리국 고(故) 김정기 실장은 혀를 내둘렀다. 대규모 신라 고분 발굴 경험이 없었던 터였다. 조사단은 그 주변에 있는 조금 작은 고분부터 시험 삼아 발굴해 보기로 했다. 그 고분이 155호분이었다.

그런데 예비 조사격으로 살펴본 155호분에서 국보 제188호로 지정된 천마총 금관을 비롯해 1만1526점에 달하는 유물이 쏟아지는 ‘잭팟’이 터졌다. 그리고 1974년, 자작나무 껍질을 덧대 만든 ‘장니’(말 탄 사람 다리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밑에 늘어뜨리는 판)에 그려진 ‘천마도’ 발견을 계기로 단순히 숫자로 매겨졌던 155호분은 천마총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그 시절 발굴단의 이름은 천마총 조사단도 아니고, 155호분 조사단도 아니고, 미추왕릉지구 발굴조사단이었다.

조사원들이 출토된 금관을 들어 올리는 모습.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14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2023년 천마총 발굴 50년을 맞아 열린 좌담회를 정리한 구술 자료집 ‘천마총 그날의 이야기’를 펴냈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 소성옥 씨,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 남시진 계림문화재연구원장 등이 좌담회에서 나눈 이야기가 정리된 자료집이다.

1973년 3월 21일, 98호분 북쪽 기슭에서 연 천마총 발굴 위령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봉토조사에 착수한 과정부터 금관, 천마도 등 주요 유물이 발견된 순간이 현장감 있는 생생한 증언으로 담겼다. 당시 조사원들의 봉급(3만6000원), 가열된 언론사의 취재 경쟁, 당시 국가 원수였던 박정희 대통령과 얽힌 비사 등 역사적 발굴을 둘러싼 뒷이야기와 당시 현장을 촬영한 사진도 살펴볼 수 있다.

1973년 3월 21일, 위령제를 올리는 모습.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조사단은 위령제를 끝낸 뒤, 천마총 봉분 꼭대기부터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자료집에서 무엇보다 간담을 서늘케 하는 부분은 약품이 잘못 스며들어서 윗장의 천마도 장니가 까맣게 손상된 점에 대한 구술 기록이다. 발굴조사단 단장이었던 김정기 문화재관리국 실장은 천마도가 건조되면서 금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50년 이상 유적 발굴을 하면서도 이렇게 괴롭고 겁이 났던 일은 없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수습을 위해 조사원들은 천마도에 빙 둘러앉아 대칼로 장니 윗장과 아랫장을 살살 분리했다. 이어 온습도 유지를 위해 에어컨이 있는 방을 찾아 국립중앙박물관장 부속실로 유물을 옮겼다.

천마총 전경.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조사원들은 한 목소리로 천마총 조사가 한국 문화유산 발굴과 보존의 전환점이 된 시기라고 전했다.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그때는 보존과학이라는 의미도 전혀 몰랐고, 우리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발굴해 왔지만, 앞으로 이런 큰 발굴할 때는 보존과학이 큰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을 어렴풋하게 했었다”며 “천마총 발굴을 끝내고 프랑스로 건너갔고, 거기서 보존과학에 대해 아주 잔뜩 신경을 쓰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용산에 새 박물관을 만들 때(국립중앙박물관), 기존보다 5~6배 보존과학 조직을 만들었는데 그게 다 ‘천마총 효과’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도 “지금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우리한테 연수받으로 온다”며 “우리나라 보존과학이 정말 이때 시작해서 50년 만에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자료집은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운영하는 ‘국가유산 지식이음’ 누리집(https://portal.nrich.g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공립 도서관과 연구기관, 교육기관 등에도 배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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