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북핵 리스크’ 현실화

헤그세스 지명자 ‘北 핵보유국’ 거론
한미정부 北 핵보유국 불인정” 확인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후보자가 14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인준 청문회를 하고 있다. [EPA]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선 가운데 한반도 안보를 둘러싼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국방 정책의 최고사령탑을 맡게 될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는 북한의 ‘핵보유국’(nuclear power) 지위를 거론하며 새로운 북핵정책을 시사했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정국 여파 속 정상외교가 실종된 한국으로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초부터 힘겨운 과제를 떠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헤그세스 지명자는 14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사전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핵보유국으로서 북한의 지위”를 거론하며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과 세계의 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중국, 러시아, 북한은 핵 역량을 크게 확대하고 현대화했다”면서 “북한은 핵무기 보유고를 확장하고 있으며 핵탄두 소형화 및 지상 이동발사시스템에서 발전하고 있다”고도 했다.

북한의 6차례의 핵실험과 지속적인 핵물질 생산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의도적으로 회피해 온 핵보유국 북한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핵보유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따라 공인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대 ‘핵무기 국가’(nuclear weapon state)와 함께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과 같은 실질적으로 핵을 가진 비공인 핵보유국을 포함한 개념이다.

지명 당시부터 미국의 전통적인 국방장관 인선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아온 헤그세스 지명자의 발언은 복잡하고 해묵은 북핵문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탓일 수 있다.

주방위군으로 임관해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보수매체 폭스뉴스 앵커를 맡아 친 트럼프 행보를 보여온 그의 국방장관 발탁을 두고 미국 내에서도 파격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한미 정부 당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인정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는 변함없다”면서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지속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은 NPT와 유엔 안보리 결의 등을 위반해 불법으로 핵을 개발하고 있다”며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와 계속 긴밀히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헤그세스 지명자의 발언에 대해 “차기 안보팀이 그것을 어떻게 규정할 지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우리는 이를 인정하는 데까지 가지 않았다. 우리의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원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사전 답변서라는 점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사실상 북한 비핵화 목표에서 변화를 추구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김윤태 K-국방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면 다음 수순은 북한과 핵 감축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트럼프 당선인이 임기 초부터 북한과 대화를 위해 나름 시도를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개인적 친분을 바탕으로 북미대화에 나설 경우 당장의 북한 비핵화 목표 달성이 어려운 만큼 핵 동결과 군축과 같은 ‘스몰 딜’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한국은 북미협상 과정에서 ‘패싱’당하는 것은 물론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재앙적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트럼프 당선인의 스타일상 북미대화의 공은 가져가면서 비용은 한국에 전가하는 시나리오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대북정책 공감대를 확대하는 가운데 북미대화 재개에 대비해 외교안보전략을 더욱 촘촘히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정대진 한라대 교수는 15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가 주최한 한반도 정세 분석과 전망 토론회에서 미국이 한국의 뜻에 반해 북한과 핵 군축협상에 나선다면 한국 내 핵무장 여론에 불을 질러 궁극적으로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미국 측에 인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내 여론 흐름을 볼 때 미국이 한국을 ‘패싱’하는 대북접근에 나설 경우 한국 내 핵무장 여론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 자명하다고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동의 없는 한국의 핵무장 추진은 어떻게 계산을 해봐도 남는 장사가 아니다”면서도 “다만 향후 주한미군 조정을 비롯해 북미 간 급격한 진전이 이뤄지고 한미동맹과 확장억제 의구심이 커지는 등의 경우 카드로 준비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미 핵협상을 완전히 터부시하는 측면이 있는데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을 현상 유지하고 감시·통제할 수 있다면 무조건 반대할 일은 아니다”며 “북미 핵협상에 어떻게 대응할지와 현실적인 북핵 통제 방안을 함께 가져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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