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의 탈을 쓴 베트남판 전설의 고향 ‘악령’[리뷰]

금기 대놓고 보여줘도 황금에 이성잃는 인간 모습들
주술과 12간지 등 동양권 오컬트 유사한 모습 발견 재미


베트남 호러 오컬트 영화 ‘악령: 깨어난 시체’는 초반부 우리나라 영화 ‘파묘’와 비슷한 설정을 여럿 보여준다. [디스테이션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지관과 무당의 역할을 겸임하는 종교인, 땅주인, 돼지띠 일꾼이 모여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땅 밑의 관을 파낸다.

3월 국내 개봉을 확정한 베트남 호러영화 ‘악령: 깨어난 시체(The corpse)’는 초반부 한국의 ‘파묘’(2024)를 닮았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예전 TV 시리즈 ‘전설의 고향’에 더 근접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영화는 저주받은 무덤에서 깨어난 악령이 죽은 자의 몸에 빙의하며 일어나는 미스터리 오컬트 호러로, 베트남의 깊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남편 ‘쿠앙’(광 투안)과 아내 ‘누’(카 누)는 도시에 살다가 가세가 기울면서 남편의 고향인 깡촌 마을로 갓 태어난 아들 ‘산’을 데리고 귀향한다. 시체 방부처리사로 일하는 ‘누’는 돈 버는 데 있어서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지만 막상 힘들게 번 돈은 도박장에 가서 허무하게 날려버린다. 이제 아기 분유와 기저귀 살 돈 마저 똑 떨어지자 이제 쿠앙에게 상속된 인근 야산의 땅을 팔기로 한다.

땅에 관심을 보이는 매수자는 지관과 무당의 역할을 겸하는 종교인을 대동하고 나타난다. 지관은 땅의 기운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쿠앙에게 혹시 이 땅에 무덤이 있느냐 묻는다. 인근에 있는 봉분 두어개를 말하는가 싶었지만 지관은 지금 그들이 밟고 서있는 평평한 발 밑의 땅을 가리킨다. 이 속에 든 관을 이장하지 않고는 땅을 살 생각이 없다는 매수자의 말에 쿠앙과 누는 마을 주민들 가운데서 돈을 받고 파묘를 도울 일꾼을 수소문한다. 역시 돈이 궁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의 일꾼들이 돈 벌어오라는 아내의 등쌀에 떠밀려 지원한다.

영화 ‘악령: 깨어난 시체’에서 문제의 관을 파묘해서 꺼내는 장면[디스테이션 제공]


지관은 이 중에서 특히 돼지띠 일꾼을 골라 땅을 파기전 묫자리를 여러번 내리치는(‘파묘’에서 파묘요! 파묘요! 파묘요! 하는 것과 비슷한) 의식을 행하게 시킨다. 돼지띠 일꾼이 땅을 내리칠 때 뱀의 형상이 튀어오르는 것을 보면 같은 동양권에서 12간지와 상극인 (돼지-뱀)띠에 대한 관념을 공유하는 것을 알 수 있어 반가웠다.

그렇게 파낸 묘는 쉽사리 땅 위로 올라오지도 않는다. 거의 다 끌어올렸을 때 쯤 관을 이고 있던 막대가 부러져 다시 땅으로 처박히고, 가까스로 수레에 얹어 이동할 때는 갑자기 바퀴 살이 부러져 인부의 허벅지를 관통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관을 여니 온갖 부적으로 봉인된 시체가 누워있다. 지관은 이렇게 부적으로 봉인된 시체는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일꾼들의 눈동자에는 시체의 목에 둘러진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목걸이가 반짝일 뿐이다.

관을 당장 화장하지 못하고 일단 쿠앙과 누의 집 뒷마당에 두는데, 어떤 악령보다 무서운 것이 인간의 탐욕인 것일까. 아까 인부 중 한 사람이 와서 관을 열고 목걸이를 빼낸다. 시체의 목이 드르륵 돌아가는 ‘사망 플래그’가 나와도 황금에 눈 먼 인간은 목걸이를 돌려놓지 않고 도박장으로 향한다. 그의 운명은 목걸이에서 새어나온 악령에 조종당해 다리 위에서 투신자살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목걸이에 마을 사람들이 차례로 손을 댄다. 전 주인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알면서도 남자는 돈으로 바꿔서 노름을 하려다, 여자는 제 목에 채워서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악령의 이미지는 긴 머리를 풀어헤친 늙은 여자로, 아주 옛날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을 살리고자 악령에 영혼을 판 엄마다. 하지만 미처 악령을 사용하기도 전에 마을 주술사들에 의해서 봉인당했다. 몇번이고 똑같이 반복되는 ‘목걸이 입수-악령에 죽임 당함’ 패턴이 단조로워지면서 ‘전설의 고향’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영화 ‘악령: 깨어난 시체’에서 남편 쿠앙(왼쪽)과 아내 누(중간)의 모습[디스테이션 제공]


목걸이의 최종 종착지는 아내 ‘누’다. 이전까지 희생자들이 그저 검은 피를 쏟고 눈이 시뻘개지며 죽음을 맞이했다면 ‘누’는 악령과 호흡이 맞았던 것인지 숙주로 삼아진다. 사지관절을 이리저리 꺾으며 부활한 그녀는 까치발로 걷고, 동물의 내장을 먹는다. ‘쿠앙’은 그런 아내가 마지막으로 노리는 아들 ‘산’을 지키고자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누’ 역을 맡은 배우 ‘카 누’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역대 베트남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갈아치우며 ‘흥행 보증수표’로 불린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배우 이름을 찾아봐야지’하는 생각은 이유가 없지 않았다. 이번 ‘악령’에서 그는 톱 여배우의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땅 밑까지 망가진다.

아울러 남편 ‘쿠앙’역의 배우 ‘광 투안’ 역시 최근 베트남 영화계에서 ‘호러 장르의 왕’으로 떠오르는 배우로 알려져있다.

줄거리를 모두 말한 것 같지만 결정적 ‘스포일러’는 누설하지 않았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영화 ‘인셉션’과 장자의 우화 ‘호접지몽’이 동시에 스쳐간다. 허무하기도 하고, 그나마 이런 결말로 맺어 다행히 ‘전설의 고향’이 아닌 ‘영화’가 되었다는 안도감이 함께 찾아온다.

악령: 깨어난 시체/ 감독 도안 낫 트룽· 출연 광 투안, 카 누/ 3월 중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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