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 기조 유지…푸틴엔 ‘동지’ 호칭”
![]()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일 남포조선소를 현지지도했다며 조선소의 여러 생산 공정을 둘러봤다고 21일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북한이 올해 들어 미국을 향한 비판 메시지를 지난해보다 두배 가까이 더 많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대북 기조를 확인하기 위한 탐색전에 나섰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통일부 정보분석국은 27일 ‘최근 북한 동향’을 발표하고 전날 기준 대미 비난 건수가 29건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5건) 대비 14건 증가한 수준이다. 전임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첫해인 2021년 같은 기간에 5건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다만 통일부는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 등 수위를 조절하며 관망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대미 담화문을 살펴보면 구어체가 문어체로 바뀌고, 미국을 향한 조롱 섞인 표현 또한 전과 달리 빠져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미국의 대북정책이 통상 4월 말에 나온다”며 “지금 미국의 대북정책이 구체화하지 않아 최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하는 대신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겠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올해 북한은 외교 중점 사항으로 러시아에 대한 파병 대가를 극대화하기 위해 러시아와 전방위적 교류를 추진 중이다. 눈에 띄는 점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호칭 또한 격상됐다는 것이다.
기존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신에서 푸틴 대통령은 ‘푸틴 각하’로 불렸지만, 2023년 8월 15일부터 ‘동지’로 승격됐다. 지난해 12월 30일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보내는 연말 연하장에도 ‘뜨거운 동지적 신뢰’라는 표현이 붙기도 했다.
북한이 상대국 정상을 ‘동지’라고 부르는 나라는 중국, 베트남, 라오스, 쿠바 등 4개국이었지만, 러시아를 은연중에 포함한 것이다.
반면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소강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다만 북한은 올해 들어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중국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2023년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과 북한 간 교류는 11건으로, 같은 기간 러시아와 북한의 교류가 63건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현저히 적다. 중북 교역량도 2023년 22억900만달러에서 지난해 21억8000만달러로 줄었다.
이에 북한은 나선 지역에 중국 단체관광 재개를 추진하고, 지난 2월엔 신압록강대교 북측 공사를 재개하는 등 관계 재건에 나섰다. 당국자는 관련 배경으로 “지나치게 러시아를 의존하는 것에 대한 리스크를 해소하는 차원”이라며 “민생 경제를 위해선 중국과 원활한 교역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올해 들어 적극적인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일부는 올해 북한이 어떤 나라와 고위급 인사 교류에 나설지 여부가 중요할 것으로 봤다.
당국자는 “올해 들어 러시아나 중국에 ‘꺾어지는 해’ 행사가 많다”며 북한의 광복절 80주년, 중국의 항일전승 80주년 기념일, 러시아의 80주년 전승절 등을 언급했다. 이어 그는 “북중러가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러 기념일이 올해 몰려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북중러 간 형태의 고위급 인사 교류가 이뤄질지가 이들 관계 변화를 보는 중요한 가늠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
2023년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만난 모습 [조선중앙통신] |
또한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시기 침체를 벗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제재 이전 수준을 밑돌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정 수입 증가율 흐름을 살펴보면 제재 본격화 이전이 3.7~4.1% 수준이었고, 코로나19 시기 0.8~1.0% 수준으로 급감했다. 지난해와 올해는 2.0~2.7%로 회복했지만, 여전히 좋지 않다.
주민 생활 또한 물가·환율 급등과 생필품 수급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건설 동원 및 세외부담 증가 등으로 어려움이 지속됐다. 쌀값 또한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북한 당국이 장마당 등에서 식량이나 공산품의 판매를 제한해 가격이 급등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경제난이 장기화하자 김 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는 민심 이반을 차단하기 위한 경제 행보를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발전 정책에 대한 홍보를 대폭 확대하고, 우리나라의 상급종합병원 수준인 평양종합병원 개원을 준비하는 등 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하면서 분단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도 드러났다. 노동신문은 노동당 창립 80년을 맞아 당 연대기를 게재하고 있는데, ‘북조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삭제됐다. 이는 과거 창립기념 때마다 ‘북조선 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등 명칭을 언급해 왔던 것과 다른 기조다.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적대적 두국가를 언급하면서 남조선이라는 표현이 사라진 것처럼 북조선이라는 표현도 일제히 삭제해 분단과 통일에 관련된 흔적을 지우는 것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최근 북한은 러시아 군수지원과 파병의 경제적 효과로 정책 수행능력이 개선됐다는 것이 통일부의 분석이다. 다만 이를 경제·민생이 아닌 김 위원장 치적 사업에 집중한 나머지 주민들은 열악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한 군수물자의 경제적 규모는 민간 전문 기관이 추산한 결과 최대 3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1년 예산이 100억달러인 것을 고려하면 한 해 예산의 30% 정도를 지원한 것이다. 다만 러시아는 아직 이에 대한 대가를 모두 지급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북한에 미치는 러시아 특수가 굉장하며, 김 위원장 치적 사업에 속도를 낼 여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 정책과 관련해선 북중러 관계 개선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당국자는 “상반기 북한은 러북 밀착과 중북 개선을 우선하되 한미에는 적대적 관망 모드를 유지할 것”이라며 “8·15 및 당 창립 80주년과 9차 당대회 계기 대내외 노선을 재정비해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