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욱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하는 ‘안미경세’ 전략 필요”

국책연구기관장 인터뷰 ④
美, 韓 10% 기본관세 유지 전망
단순 무역불균형 해소목적 아냐
제2의 플라자합의 현실적 불가능

새 정부 통상정책, 단순협상 아닌
디지털 경쟁·인력·투자 연계해야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22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강달러가 고민인 우리로서도 수출 경쟁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일정 수준의 원화 절상은 검토해 볼 수 있는 카드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제공]


“미국이 인위적으로 달러 가치를 절하시키는 ‘제2의 플라자합의’를 추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제한적 범위 내에서 환율 협의는 가능할 것입니다. 강달러가 고민인 우리로서도 수출 경쟁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일정 수준의 원화 절상은 검토해 볼 수 있는 카드라고 생각합니다.”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지난 22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진행 중인 한·미간 환율 협상의 방향성에 대해 이같이 분석했다.

KIEP는 세계경제와 관련된 문제를 조사·연구·분석함으로써 국가의 대외경제정책 수립에 이바지하기 위해 1989년에 설립된 국책 연구기관이다. 이 원장은 2023년 7월 제12대 KIEP 수장으로 임명되기 전에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 제도연구실장,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기획처장, 한국국제통상학회(KATIS) 회장 등을 거치며 국제무역·경제 분야에서 신망을 얻어왔다.

한·미가 지난달 재무·통상 ‘2+2’ 협의에서 의제로 정한 환율 협상을 최근 본격 개시한 가운데 외환시장은 ‘제2의 플라자합의’ 경계감에 요동치고 있다. 이달 일평균 환율 변동폭은 지난해 7월 외환시장 연장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이 원장은 플라자합의 재현 가능성에 대해 “예전에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환율을 조정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민간의 영역도 크기 때문에 공적 개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과거 일본·독일은 높은 관세보다는 차라리 환율을 조정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합의를 받아들였지만, 중국은 경제적인 강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중국 등 다른 나라의 협조 없이 달러 약세를 이끌어내는 건 한계가 있다는 게 이 원장의 시각이다.

그는 “미국 역시 물가 상승 압력과 부채에 대한 부담이 늘어날 수 있기에 제한된 범위 내에서 환율 협상을 하려고 할 것”이라며 “달러 강세로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하길 원한다는 점에서도 무역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달러 약세를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달러·원화 수준에 대해서는 차기 정부가 결정할 문제라고 봤다.

한·미는 환율 외에도 균형무역, 비관세조치, 경제안보, 디지털 교역, 원산지, 상업적 고려 등으로 의제를 구체화하며 상호관세 유예 전(7월 8일)까지 ‘줄라이 패키지(July Package)’ 마련을 위한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우리 정부의 협상 목표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대해 책정한 25%의 상호관세(기본관세 10%+국가별 차등관세 15%)와 전 세계를 상대로 부과하고 있는 철강·알루미늄·자동차(25%) 등 품목별 관세의 전면 철폐다.

이 원장은 미국·영국 간 협상에서 줄라이 패키지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미국은 영국에 10% 관세는 유지하되, 상대적으로 품목별 관세에 대해서는 유연한 접근을 했다”면서 “우리 역시 품목 관세에서 최대한 양보를 얻어내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대미 투자가 많은 데다 반도체·조선 등 미국이 육성하려는 제조업 경쟁력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국가이기에 ‘산업 협력 카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면서 “타국 수입품을 미국산으로 전환해 전체 수입량을 맞추는 방식으로 실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이 한국에 대해 10% 기본관세는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영국이 미국에 대해서 무역적자국인데도 10% 기본관세가 매겨졌다”면서 “단순히 무역 불균형 해소보다는, 국내 상황에 따라 포괄적 감세를 하면서도 재정수입의 원천을 보충하겠다는 모티베이션(동기)이 강해 보인다는 점에서 현시점에서 볼 때 10% 기본관세는 모든 나라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미국 측이 참여 압박을 더하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투자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전 세계 3위 LNG 수입국으로서 안정적인 수입선을 확보한다는 측면은 있지만 정책 불확실성과 채산성 등을 두루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타당성 조사를 확실히 하고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측이 협의 결과에 만족감을 드러내고 속도전을 예고한 데 대해서는 미국 내 물가 상승 압력, 경기 둔화 우려 등 급변한 경제 여건을 고려한 제스처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 원장은 “지난달 상호관세 발표 이후 국채·외환시장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미국 언론에서도 물가와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면서 “관세 인상 전 재고 확보와 소비 둔화가 맞물리면서 한동안은 물가 상승이 제한적으로 나타났지만 앞으로는 상당 부분 물가지수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한·미간 협상과는 별개로 격화하는 미·중간 갈등은 한국 경제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세충격이 본격화하면서 이달 들어 20일까지 한국의 수출액은 320억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2.4% 감소했다. 전체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대미·대중 수출 감소가 전체 수출 부진을 이끌었다.

이 원장은 “기존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안미경세’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인도·동남아·중남미 등 성장 잠재력이 큰 글로벌사우스의 전략적 연대 강화가 중요하다”며 “현지화 전략을 병행해 한국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또 “새 정부는 통상정책을 단순한 협상 중심이 아닌 디지털·기술 경쟁, 인력 이동, 투자 연계까지 아우르는 종합 성장 전략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면서 “포용성·혁신성·연계성을 갖춘 대외경제정책이 미래세대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것”이라고 봤다. 양영경·배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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