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AI 장편 영화 “가능성 보여주고파”
“비용·시간 효율 극대화…상상 구현 가능해”
손익 분기점 20만 명 “1편 잘되면 2편도…”
![]() |
| (왼쪽부터) 영화 ‘중간계’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과 권한슬 AI 감독 [CJ CGV 제공]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영화에 대한 상업적 실증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 영화의 역할은 업계가 AI로 다음 시도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강윤성 감독)
AI 기술은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됐다. AI가 일상을 파고드는 사이, 산업계는 더 큰 격변의 파고를 넘고 있다. 위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한 AI의 발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들과 어떻게 공생해야 할 것인가.
지난 15일 개봉한 국내 최초 AI 활용 장편 영화 ‘중간계’는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 첫발을 내디디며 상업 영화와 AI의 공존에 대한 답을 제안한다. AI를 전면에 내세우며 야심 차게 등장한 이 영화는 관객· 투자·개봉작 감소라는 삼중고에 빠진 극장가를 되살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 |
| 중간계 포스터 [CJ CGV 제공] |
지난 14일 영화 개봉을 하루 앞두고 ‘중간계’를 쓰고 연출한 강윤성 감독과 영화의 AI 연출을 맡은 권한슬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때보다 돌파구가 간절한 영화산업의 오늘, 그 길잡이를 자처하고 나선 이들에게선 영화 ‘중간계’가 변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란 강한 믿음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영화 ‘중간계’는 이승과 저승 사이 중간계에 갇힌 사람들과 그 영혼을 소멸시키려는 저승사자들 간의 추격전을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다. 강 감독은 25년 전 데뷔작으로 써놨던 ‘뫼비우스’를 다시 꺼내 AI 활용 영화에 맞게 고쳐 썼다.
실사 촬영과 컴퓨터그래픽(CG)을 염두에 둔 장면들을 없애고, 대신 AI가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크리처와 파괴 장면을 넣었다. 강 감독은 “AI로 만들면 적은 예산에서도 이 정도로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차량이 폭발하고, 사천왕과 저승사자가 싸우며, 인간의 형상을 한 존재가 거대 괴물로 변신하는 등 기존에 시각특수효과(VFX)로 구현해 왔던 장면들은 모두 AI 기술로 대체됐다.
![]() |
| 강윤성 감독 [CJ CGV 제공] |
영화의 시작은 KT로부터 AI 단편 영화 제작을 제안받으면서였다. 출발은 단편이었지만 시나리오를 고치는 과정에서 장편이 됐다. 강 감독은 “AI가 영상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걸 가져와서 상업 영화로서 처음으로 실증을 해보자란 마음이 생겼다”면서 “준비 단계였던 올 초만 해도 AI로 구현이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는데, 촬영을 하면서 점차 그것이 가능해졌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권한슬 감독은 처음으로 장편 영화 제작에 도전했다. 그는 국내 AI 영상 제작에 있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창작자이자, AI 영화의 ‘개척자’라고도 불린다. 지난 2023년 배우, 카메라, 세트 없이 순수 생성형 AI로만 제작한 영화 ‘원 모어 펌킨’으로 제1회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권 감독은 장편 제작 과정에서 기술적 한계가 있었지만, 영화 제작을 마친 현재 AI 기술은 그 한계마저도 극복된 상태라고 말한다.
권 감독은 “작품의 호흡이 길면 AI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어렵다. 앵글이나 조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면서 “하기만 작업이 끝나고 나니 AI의 발전으로 모든 부분이 해결됐다. AI 기술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 |
| 권한슬 AI 감독 [CJ CGV 제공] |
AI를 활용했을 때의 가장 큰 장점은 효율이다. 제작비도 제작비지만 시간적 효율이 극적으로 높아진다. 통상 ‘중간계’와 같은 1시간 분량의 영화를 제작하려면 후반 작업만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AI 작업에 든 기간은 한 달 반에 불과하다. AI로 작업의 속도감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대신, 미처 채우지 못한 여백은 CG로 덧입혀 보완했다.
강 감독은 통상 3~4일이 걸리는 폭파 장면을 예로 들며 “AI 기술을 이용하면 그 장면도 1분 만에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권 감독은 “단순히 비용 절감 뿐 아니라 제작 기간이 대폭 줄이는 데 중점을 둔다”면서 “작업 기간 감축으로 인한 효율성이 크다”고 말했다.
영화 개봉 전, CG 담당 스태프들은 ‘이 상태로 관객에게 내보내면 안 된다’며 영화의 퀄리티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 ‘중간계’ 속 AI 신들은 어딘가 정교하지 않고 실사와 완벽히 융합하지 못하며 불완전한 느낌을 준다. 물론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감독이다. 강 감독은 “미숙함에 매몰되기보다, 작품을 완결짓고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산업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기술을 ‘테슬라’에 빗대 설명을 이었다.
![]() |
| [CJ CGV 제공] |
강 감독은 “테슬라가 처음 전기차를 낼 때 문짝도 맞지 않고 기존의 가솔린차처럼 완벽한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안 맞는다고 차를 출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면서 “우리에게는 시도가 중요했다. 다음에 나오는 AI 활용 영화들은 훨씬 더 좋은 기준의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권 감독은 “AI 작업을 하는 우리조차도 CG업계 출신들이다. AI가 완벽하게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미래적, 비전적인 것을 바라보고 한 작업”이라면서 “어찌 됐든 ‘중간계’는 역사적 선례가 될 것이다.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업 영화와 자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돈을 벌기 위한 영화를 만들려면 돈이 필요하다. 투자자들의 발길이 사실상 끊긴 상황에서, 영화 ‘중간계’는 최소한의 예산으로 구현할 수 있는 영화의 수준과 가능성을 제시한다. 강 감독은 “나 역시나 돈(투자금)을 구하기 어렵다. 한정된 예산으로 끝내야 해서 여러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감독료와 시나리오료도 없었다.
![]() |
| [CJ CGV 제공] |
강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에서 원하는 것은 늘 ‘재미있는 이야기’였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AI로 만들었냐의 여부가 아니라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인지를 판단한다”면서 “제작비가 비싸다고 비용이 적게 드는 코미디나 로맨스만 만들면 시장이 위축된다. AI가 상상력의 폭을 넓히고, 적은 비용으로 상상을 구현해 줌으로써 침체해 있는 시장의 창작자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다음 이야기를 예고하며 끝난다. 2편의 시나리오는 이미 쓴 상태지만, 제작을 확정한 것은 아니다. 강 감독은 “1편이 잘 돼야 2편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20만이다.
두 감독은 AI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에 공감했다. AI가 빠른 속도로 CG의 영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데도 동의했다. AI를 ‘도구’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은 영화계 구성원들의 몫이다.
![]() |
| (왼쪽부터) 영화 ‘중간계’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과 권한슬 AI 감독 [CJ CGV 제공] |
“AI는 창작의 영역을 건드리잖아요. 우리가 계속 AI는 ‘도구’라고 이야기를 해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들어온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어찌 됐든 AI의 흐름을 부정할 수는 없거든요. 이제는 창작까지 들어온 AI 자체를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하고, 이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강윤성)
“AI 기술은 곧 영화의 모든 후반작업 단계의 축이 될 것입니다. 무조건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해요. 과거 피처폰 시대에 등장한 스마트폰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게임이나 광고 업계는 이미 제작 준비 과정에서 콘셉트 티저 같은 것들을 AI로 대체하고 있어요. 하물며 2~3년만 지나도 AI는 영화제작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권한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