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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서승만씨의 국립정동예술극장 대표 선임을 두고 ‘보은 인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가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한 이력에 주목하며, 이번 인사를 ‘낙하산’으로 규정짓고 비판한다.
‘보은(報恩)’, 즉 ‘은혜를 갚는다’라는 말은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 중 하나이다. 도움을 받으면 갚고, 신뢰를 받으면 책임으로 응답하는 것.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정서이자 관계의 기초다. 이를 두고 무조건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정치적 맥락을 떠나 인간 사회의 작동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에 가깝다.’인지상정(人之常情)’을 난도질하면 사회는 존립의 근거를 잃고 만다.
물론 공적 영역에서의 인사는 능력과 공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격이 없는 인물을 단지 개인적 인연이나 정치적 충성만으로 임명한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다. 이때 비판의 초점은 ‘보은’이라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인사가 공적 기준을 충족하는지 여부에 맞춰져야 한다.
최근의 논란은 종종 이 구분을 생략한다. 누군가 특정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이후의 모든 임명은 곧바로 ‘낙하산’으로 낙인찍힌다. 이는 결과적으로 능력 검증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흐리고, 정치적 입장에 따른 편가르기로 논의를 축소시킨다.
정치는 관계를 통해 조직이 생기고 그것이 선출 권력의 세력이 된다. 표를 모으는 힘이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는 구조에서,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고 함께 움직였던 이들이 일정한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를 모두 부정한다면, 정치적 책임과 연대 자체를 부정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정권이 선택한 모든 임명직은 사실상 ‘보은인사’다. 그걸 ‘낙하산 인사’라는 불공정의 프레임으로만 들이대면 권력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의 근본 생명줄을 끊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필요한 것은 ‘보은 인사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이 아니다. 그 인물이 해당 자리에서 역할을 수행할 능력과 비전을 갖추었는지, 공공기관의 책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냉정한 평가다. 보은이든 아니든, 기준을 통과하면 문제될 것이 없고, 통과하지 못하면 비판받아야 한다. ‘보은’이라는 단어를 곧바로 부정의 낙인으로 사용하는 순간, ‘그 인물이 최선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덧붙이자면 서승만씨에 대해서는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배경에 집착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특정 직업을 하대하려는 차별과 편견의 심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보은인사’가 불공정하다면 차별하고 무시하려는 심보부터 가라 앉히는 게 우선이다. 감정적 프레임 대신 실질적 기준으로 인사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공공성을 지키는 성숙한 방식이요, 원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