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진의 예고편] 절망, 희망, 다시 나락…터널서 마주한 서늘한 현실

10일 개봉 ‘터널’

올여름 ‘빅4(‘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 영화 중 가장 알려진 정보가 없던 ‘터널’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터널’은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현실에 강력한 기둥을 올려 쌓아 지어진 작품이었다. 영화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도 “‘터널’은 현실에 발을 디딘 영화”라고 표현했다. 어쩔 수 없이 2년 전 4월의 아픈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탓에 논쟁의 중심이 될지도 모르겠다.

자동차 영업대리점 과장인 정수(하정우)는 평범한 가장이다. 고객에게 깍듯하고도 재치있는 말주변으로 호감을 사고, 큰 계약건을 앞두고 한껏 들떠 있는 샐러리맨이다. 그의 집에선 아내와 딸이 아빠가 사오는 생일케이크를 기다리고 있다. 

집으로 향하던 정수는 터널을 지난다. 갑자기 괴성이 들리면서 터널 안 조명이 깜빡깜빡하더니, 이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콘크리트 잔해들과 돌덩이뿐. 생수 두 병, 케이크 하나, 배터리가 78퍼센트 남아있는 휴대폰으로 그는 얼마만큼이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너진 터널 밖에서는 정수의 생사가 확인되자 구조 작업이 한창이다.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은 현장을 찾은 장관과 고위공직자들에게 “잘 부탁한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구조본부대장 대경(오달수)은 전화를 통해 침착하게 정수를 안정시키고 누구보다 성실히 구조 작업에 임한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차가워져만 간다. 구조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람이 죽고, 주변에 있는 제2터널 완공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여론은 분열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구조 작업에 밑그림이 됐던 터널 설계도와 실제 터널 구조가 다른 것으로 밝혀지면서 구조 작업은 난항에 부딪힌다.

영화는 터널 속에 갇힌 주인공의 생존기를 ‘로빈슨 크루소’ 처럼 보여주는 한편, 터널 밖 사회의 모습은 신랄한 현실 고발 다큐멘터리처럼 조명한다. 장면과 대사 곳곳에서, 2014년 4월 세월호와 함께 침몰해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정우는 ‘인생 연기’를 펼쳤다. 극도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긍정적으로 이겨내려는 정수의 캐릭터는 특유의 에너지를 가진 하정우를 만나 확 살아났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다시 나락으로 빠지는 그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터널 밖 배두나와 오달수의 연기도 극의 균형을 잘 잡아 준다.

결말이 어쩔 수 없이 ‘생환’ 혹은 ‘죽음’ 두 개의 선택지뿐인 상황에서, 영화는 관객들을 끝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충분하다.

1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26분.

jinlee@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