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연합]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의혹을 언론에 흘렸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낸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다시 판단하라”고 했다. 정정보도 청구에 대해선 이 전 부장 측이 최종 승소했지만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선 그렇지 않았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9일 오전, 이 전 부장이 노컷뉴스 운영사 CBSi와 소속 논설위원, 기자 등을 상대로 낸 정정보도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앞서 원심(2심)은 노컷뉴스가 정정보도를 해야할 뿐 아니라 CBSi 측에서 이 전 부장에게 총 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논두렁 시계 의혹 사건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을 때 명품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했고, 보도 이후 열흘 만에 목숨을 끊었다.
이후 보도 과정에 대한 국정원·검찰·언론사 간 진실공방이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러다 2018년 노컷뉴스는 논평에서 이 전 부장이 논두렁 시계 보도에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요청에 따라 검찰이 언론에 의혹을 흘렸고, 이 전 부장이 국정원의 기획이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고 썼다.
이에 대해 이 전 부장은 2018년 9월 “시계 수수 의혹을 언론에 흘리지 않았고, 국정원이 흘리는 데 개입하지도 않았다”며 정정보도 소송을 냈다.
1심은 이 전 부장 측 패소로 판결했다. 1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15민사부(부장 김국현)는 2020년 2월, 이같이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전 부장이 2009년 국정원 간부를 만난 사실이 있다”고 봤다. 이어 “국정원 간부가 ‘시계 수수 의혹을 공개해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주는 것이 좋다’는 취지로 말했다”며 “이 전 부장을 사건 관여자료 표현한 보도가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8민사부(부장 장석조)는 2021년 8월, 이 전 부장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이 전 부장이 국정원 간부로부터 시계 수수 의혹을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은 사실이 인정될 뿐”이라며 “실제 이 전 부장이 언론에 정보를 흘리는 데 관여했음을 인정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검찰이 국정원의 요청에 따라 시계 수수 의혹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는 사실을 이 전 부장이 시인했다는 부분은 대검 중수부장이었던 이 전 부장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내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컷뉴스가 정정보도와 함께 총 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그간 이 전 부장은 ‘국정원이 기획한 것’이라며 “국정원 측에서 명함을 내밀면서 왔지만 야단을 쳐서 돌려보냈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이 받아들여진 셈이었다. 2심 판결에 대해 당시 이 전 부장은 “저와 검찰이 언론에 정보를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한 판결”이라며 “기쁘다”고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도 원심(2심) 판결 중 정정보도 부분에 대해선 수긍했다. 대법원은 “노컷뉴스 측에서 그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이 전 부장 측은 그 허위에 대한 증명책임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며 “정정보도 청구를 인정한 원심(2심) 판단은 수긍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손해배상 청구 부분에 대해선 판단이 달라졌다. 대법원은 ‘이 전 부장이 논두렁 시계 보도에 관여했다’고 보도한 부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까지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이 부분 보도는 공직자의 직무수행에 대한 감시·비판·견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공익을 위한 것임을 인정할 수 있다”며 “당시 시계수수 의혹 관련 사건정보가 어떻게 언론에 유출됐는지에 대해 의혹이나 논란이 계속됐고, 국정원은 물론 김 전 부장·검찰이 개입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고 봤다.
이어 “이 부분 보도는 김 전 부장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타당성을 잃은 것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적 인물의 공적인 관심 사안에 대해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