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론 입법’ 野 42개·與 17개…거수기·민생 뒷전 지적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임기 시작 한 달 반 만에 법안 및 탄핵소추안 등의 당론 채택에 속도를 내며 ‘민생 주도권’ 승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후보들 간 공방이 거세지면서 통상 여당이 끌고 가던 민생 주도권 우위에서 멀어지는 모양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현재 국면은 여야가 뒤바뀐 형태”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권에 따르면 15일 오전 기준 민주당에서 채택한 당론 안건은 총 42개다. 이 중에는 민생 개혁 법안 외에도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등 특검법안과 ‘검사 4인 탄핵 소추안’, ‘일본 정부의 사도 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철회 및 일본 근대산업시설 유네스코 권고 이행 촉구 결의안’ 등이 포함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앞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들도 다수 담겼다.

이처럼 몰아치는 당론 법안 채택에 민주당 내부에선 “법안 내용을 숙지하기도 빠듯하다”는 토로도 나온다. 지난 11일 민주당 정책 의원총회에선 약 1시간 반 만에 7개 법안이 당론으로 채택됐다. 함께 올라온 법안 설명 자료는 약 170페이지에 달했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거수기가 된 것 같다”는 목소리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정책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자유토론 시간이 당연히 있었는데 의견이 안 나오고 의원들께서 별로 토론에 집중을 안 하시는 분위기”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미래를 위한 약속, 공정 경선 서약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동훈, 윤상현, 원희룡, 나경원 후보. 임세준 기자

반면 국민의힘은 22대 개원 전 총 31개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겠다고 했지만, 이날 오전까지 발의된 법안은 17개에 그쳤다. 더구나 전당대회에 출마한 당대표 후보들 간 내전까지 격화하면서 ▷저출생 대응 ▷민생 살리기 ▷미래산업 육성 ▷지역균형발전 ▷의료개혁 등을 주제로 한 ‘집권여당’의 법안들이 가려지는 형국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국민들의 관심이 전당대회에 묻히고 있지만 끝나면 조금 더 부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감사원 옥죄는 법안, 예전에 냈던 걸 또 내는 등 그런 법안이라면 우리도 하루에 100개씩 찍어낼 수 있다”며 “법안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형국이 장기화될 경우 여야의 이미지가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민주당이 마치 여당처럼 각종 정책 입법을 쏟아내고, 여당은 총선 패배에도 권력 투쟁 중”이라며 “여당 지지율이 대통령 지지율을 견인하는 장점마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여당은 권력 투쟁만 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고, 반면 야당은 다소 무리하더라도 준비된 국정 주도 이미지를 축적할 수 있다”며 “여러 가지로 여당에겐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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