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국무총리가 권한 대행
“헌법에 따른 대통령 궐위·사고로 볼 수 없어”
책임총리제 도입 필요성 지적도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을 담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박지영·이용경 기자]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내놓은 ‘질서 있는 퇴진’을 두고 헌법학계에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진 사임이나 탄핵 없이 사실상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해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이 법률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헌법 해석에도 합치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8일 한 대표와 한 총리는 “국무총리와 당이 협의해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2선으로 물러나고 한 총리가 사실상 권한을 대행한다는 취지다.
방승주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9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행위가 내란죄 구성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이 학계와 법조계의 중론”이라며 “현재 대통령으로서 직무 수행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지만 사임을 한 것도,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것도 아니라 궐위라 할 수 없다”고 했다.
헌법 제71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 또는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할 수 있다. ‘궐위’는 대통령이 없다는 뜻이다. 법조계에서는 ▷사망 ▷탄핵 결정으로 인한 파면 ▷사임 ▷피선거권 상실 등이 해당한다고 본다. 이승만·윤보선·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대통령이 존재하지만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의미의 ‘사고’에는 ▷탄핵 소추 의결로 헌법재판소 결정 때까지 직무집행이 정지된 경우 ▷대통령의 신병, 장기간 해외 여행 등이 꼽힌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 심리를 받던 기간 각각 고건·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한 사례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 |
전학선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 또한 “현재 대통령은 궐위 상태도, 사고 상태도 아니다”라며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서울권 로스쿨 A교수는 “국무총리는 장관 임명과 관련해 제청권만 가진다. 권한 배분은 헌법적 강행규정에 해당해 대통령 자신도 임의로 처분할 수 없다”며 “위헌적 관행이 헌법적 정당성의 부여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수사에 따라 윤 대통령의 지위가 바뀔 수 있어 탄핵 소추나 자진 사임으로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취지다. 또다른 서울권 로스쿨 B교수는 “현재 정부와 여당의 입장은 한 총리의 요구를 윤 대통령이 수용한다는 의미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이라며 “윤 대통령은 물론 한 총리 또한 유력한 수사의 대상이다. 결국 대통령 직무배제 및 총리·국무위원의 권한 대행을 할 법적인 근거는 사임·탄핵 뿐”이라고 했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이참에 ‘책임총리’를 도입해 한 총리에게 권한을 주자는 주장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가 행사했던 선례가 있다. DJP 연합에서 김종필이 총리로써 장관 임명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 적이 있다”며 “시국이 엄중한 만큼 ‘비상총리’라는 관점에서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 받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장 교수는 “비상총리가 장기화 되서는 안 된다. 한 총리와 한 대표 또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책임총리는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 등 총리의 권한을 강화해 대통령을 견제하는 것을 말한다. 대통령을 견제하는 것을 말한다. 국민의정부 초창기 김종필 국무총리가 일부 장관 인사를 지목하고, 참여 정부 시절 이해찬 총리의 국정 운영 사례가 꼽힌다.
다만 책임총리 도입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지낸 이헌환 아주대 로스쿨 교수는 “책임총리제는 프랑스 이원집정부제 같은 경우에 총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 헌법 체제 하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부 형태는 아니다”라며 “평시라면 대통령이 총리에게 국정 운영 책임을 부여하는 재량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사고 사유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총리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반헌법적”이라고 강조했다.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 또한 “총리는 단지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려면 대통령의 궐위 또는 사고 상황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총리와 한 대표의 담화 내용은 헌법의 규정이나 체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면서 국정 혼란을 막기 위해 총리와 여당 대표가 긴밀히 협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