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신경쓰면 돈 더 번다”…우수 시공사에 인센티브

고양미앙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인터뷰
정부가 안전 투자와 보상제도 직접 운영
벌점제·인센티브 병행, ‘안전=경쟁력’ 확산
현장 구성원 모두 위험 예방 시스템 체화
노사정 협의로 규제 아닌 ‘공동 약속’ 실현
처벌로는 문화 못 바꿔…책임 명확히 해야


지난달 30일 싱가포르 싱가포르국립대학교(NUS) 사무실에서 만난 고양미앙(Goh Yan Miang) 건설환경학과 교수. 신혜원 기자


“안전에 적극 투자한 업체가 보상을 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안전은 도덕적으로 옳다’는 차원을 넘어 ‘안전하게 하면 돈을 더 번다’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하는 겁니다.”(고양미앙 싱가포르국립대 건설환경학과 교수)

‘안전 선진국’으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2006년 산업안전보건법(WSH Act) 제정 이후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고 현장 중심의 안전문화 정착에 성공했다. 노사관계, 산업구조, 정치 체제, 사회적 분위기 등 한국과 여러 면에서 다른 국가지만 안전을 하나의 문화로 만든 정책적 접근은 주목할 만하다. 안전을 규정하기보다 독려하고, 현장의 모든 구성원이 스스로 위험을 예방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싱가포르가 만들어낸 안전문화의 핵심이다.

지난달 30일 싱가포르국립대학교(NUS) 사무실에서 만난 고양미앙(Goh Yang Miang) 건설환경학과 교수는 지난 20여년의 싱가포르의 건설현장 체질 변화에 ▷리더십 ▷시스템 ▷문화 등 세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고 교수는 WSH Act 제정 전후 고용노동부(MOM)에 재직했고, 이후 학계로 복귀해 싱가포르의 건설안전 정책을 연구하며 정부 및 산업계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리더십·시스템이 만든 안전문화…사후 처벌서 사전 예방으로=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산업재해율이 높았던 싱가포르지만 2004년 발생한 니콜하이웨이 지하철 공사현장 붕괴사고가 정책전환의 계기가 됐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대대적인 안전혁신 드라이브를 걸었고, 법의 축과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이 사후 처벌에서 사전 예방으로 이동했다.

고 교수는 “당시 MOM에 근무하며 변화를 직접 목격했는데 부처의 리더와 공무원들은 ‘이건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각오가 있었고 산업안전을 국가적 과제로 만들었다”며 “기존에는 범위도 좁고 사후 처벌의 규정 중심이었던 관련 법을 각 주체가 스스로 위험성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성과 중심 체계로 바꿔 의무와 책임을 모두에게 부여한 것이 굉장히 큰 변화였다”고 회상했다.

이전까지 ‘A, B, C를 해야한다’는 식의 조항이 법의 주를 이뤘다면 WSH Act는 ‘무엇을 하지 않으면 누구의 책임인가’를 명확히 하는 책임 기반 체계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고 교수는 WSH Act 제정과 함께 모든 사업장에 ‘위험성 평가(Risk Assessment)’를 의무화한 것도 핵심적인 변화로 꼽았다. 위험성 평가는 정부의 단속보다 ‘현장 스스로’ 위험요인을 식별·관리하도록 하는 자율관리형 안전제도로, 모든 근로자가 교육을 통해 결과를 공유해야 한다.

그는 “정부의 리더십과 시스템이 변화했고 이는 공유된 가치와 믿음으로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며 “이러한 인식이 행동을 통해 드러나면서 안전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인근 육상교통청(LTA)의 지하철(MRT) 공사 현장


‘발주처’ 정부, 벌점제와 인센티브제 병행=문화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발주처로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안전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직접 나서서 조성한 것도 리더십이 발휘된 결과다.

고 교수는 “싱가포르에는 자원을 투입해 안전을 장려하는 제도들이 있다”며 “일례로 니콜하이웨이 붕괴사고의 발주처였던 육상교통청(LTA)은 사고 이후 안전투자를 크게 늘렸고, 계약 조건에 안전성과와 관련된 인센티브 조항도 넣어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많은 공공 건설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정부가 스스로 모범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LTA를 비롯해 건설청(BCA), 주택개발청(HDB) 등 공공 발주처는 WSH 보너스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WSH 보너스제도는 5000만싱달러(약 550억원) 이상의 공공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시공사가 공사기간 중 안전관리를 우수하게 했다면 공사 계약액의 최대 0.5%를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안전점수 미달 시 입찰을 제한토록 하는 WSH 벌점제도와 동시에 이 같은 인센티브도 병행해 산업 전반의 안전문화 정착을 유도하고 있다.

WSH 보너스제도 외에도 금융 인센티브, 안전장비 보조금 제도도 있다. MOM 산하 산업안전보건위원회(WSH Council)는 비즈세이프(bizSAFE)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의 안전관리 수준을 1~5단계로 인증하는데, 3~5단계 인증 기업은 은행 대출 심사 시 가점을 받거나 저리 융자 대상에 포함된다. 또한 빈번히 발생하는 트럭 크레인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안정성 제어장치 설치 비용의 최대 50%를 정부가 지원해주는 보조금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보상구조가 ‘안전이 곧 경쟁력’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는 게 고 교수의 분석이다. 한국에선 WSH 보너스제도와 같은 금전보상 구조가 부재하고, 산업안전보건 인증을 받은 기업에 금리 우대나 보증한도 확대를 제공하는 금융지원이 일부 시행되고 있지만 적용 분야가 한정적이다.

고 교수는 “인센티브는 단순히 돈을 주는 차원이 아니라 발주처와 시장이 ‘안전이 중요한 가치’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방식”이라며 “정부가 최대 발주처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민간 개발사들도 동참하며 산업계 전반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일방적 규제 안되려면 노사정 협의 중요…설계 단계부터 발주처가 책임져야=그는 안전이 문화로 뿌리내리려면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조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전정책 수립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의견이 배제되면 문화가 아닌 단순한 규정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싱가포르는 정부·고용주·노조가 함께 협의하는 협의체가 안전정책을 같이 논의하고 의견을 나누는 장을 만들었다”며 “이런 공식 플랫폼이 있어야 안전정책이 정부의 일방적 규제가 아니라 업계와 노동자의 목소리도 반영된 제도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WSH Act는 정부와 기업, 노동계가 함께 정책을 논의하고 집행하는 노사정 구조에 의해 운영된다. 2008년 출범한 MOM 산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정부·산업계·노동계가 함께 참여하는 노사정 공동 운영기구로서 근로자 역시 정책의 대상이 아닌 실행 주체로서 현장의 안전관리에 직접 참여하도록 설계돼 있다.

한편 ‘설계 단계 안전관리(DFS·Design for Safety)’를 연구해온 고 교수는 건설공사 밑그림 단계에서의 안전도 필수적 요소라고 언급했다. 싱가포르는 발주처 중심의 DFS 제도를 2016년부터 전 현장에 의무화해 시행 중이다. DFS 제도는 발주처가 직접 설계 단계에서부터 위험요소를 찾아 제거하도록 의무와 책임을 부여하는 것으로, 사업장마다 DFS 전문가를 배치한다. 한국도 설계안전성검토 제도가 있지만 일부 공공공사에 국한되고, 설계·감리자 중심의 검토에 머물러 실질적 예방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고 교수는 “DFS 제도의 가장 중요한 점은 발주처에게 법적 책임을 부여했다는 것”이라며 “발주처는 설계자·시공자가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안전을 고려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DFS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발주처에게 실제 책임을 부여하고, 엔지니어·건축사와 같은 설계자들이 ‘안전은 시공사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근로자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같이 공사 전 단계에서, 전 구성원들이 안전을 내재화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언급한 고 교수는 사후 처벌식 규제로는 위험을 예방하기 어렵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사망사고 이후가 아니라 위험관리 단계에서부터 관리하는 방향이 효과적”이라며 “처벌만으로는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신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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