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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코스피가 종가 기준 사상 처음 5000선을 돌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도 ‘오천피’에 안착할 만큼 국내 증시 열기는 뜨겁고, 한국 자본시장 체급이 달라졌다는 환호가 나온다. 국내 증시가 연일 기록적 성취를 보여주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그 다음은?’이란 질문이 떠오른다. 현 정부 들어 추진된 여러 주주친화 정책이 코스피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지만, 증시와 실물경제 간 괴리는 여전하고 기업들의 장기적 성장 동력 확보는 숙제로 남아 있어서다.
이른바 코스피 5000 시대를 지탱하고 더 나아가게 할 동력은 기업의 투자와 혁신인데,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법 리스크가 가장 치명적이라며 브레이크를 밟는다. “나중에 문제 됐을 때 배임으로 엮이지 않을 논리부터 만드는 게 우선”이란 것이다. 신사업의 진출이나 인수합병(M&A), 대규모 투자 같은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시장성이나 기술력보다는 배임죄 수사 가능성부터 먼저 우려하는 게 기업들의 현실이다. 주객전도의 상황이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잡고 대체 입법을 예고한 것도 이런 문제 인식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해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임무 위배’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점이다. 경영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자원을 베팅하는 것인데, 현재의 법 적용 현실에서는 결과적 실패가 사후적으로 배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통계를 보면 이런 사법 리스크가 단순한 엄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사법연감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4~2023년 10년간 배임·횡령 사건 무죄율(평균 6.7%)이 형법 전체 평균(3.2%)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국제 비교는 더 적나라하다. 지난해 9월 경총은 최근 10년간 배임죄 기소 인원이 한국은 연평균 965명인 반면 일본은 31명 수준이라며, 우리 제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적용’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처벌 수위의 합리성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특경법은 배임 이득액이 커지면 형을 대폭 가중한다.
이득액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까지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판단의 실패가 형사처벌과 결합될 여지가 생긴다.
그렇다면 배임죄 폐지는 어떤 그림이어야 할까? 당연히 횡령이나 뇌물 같은 명백한 부패 범죄는 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다만 정상적 경영판단은 경영판단원칙의 명문화 등으로 면책 기준을 분명히 하고, 분쟁의 주된 해법은 민사와 행정제재로 옮겨야 한다. 아울러 배임죄 폐지로 인한 처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체입법 논의를 서두르고, 대체입법은 요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곧 비용이 되는 시대다. 배임죄라는 낡은 족쇄를 풀지 않고서는 우리 경제가 ‘책임’과 ‘혁신’ 사이에서 투자도 고용도 망설이며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법은 기업을 잠재적 범죄자로 감시하며 벌하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범위를 정해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코스피 5000 지수 너머 진정한 선진 경제로 도약하기 위해 과도한 기업 형벌이라는 유령과는 작별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