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이 다시 깨운 ‘단종의 시간’…허민 청장 “문화유산 현장으로 여운 잇겠다”

‘왕과 사는 남자’ 8일 기준 1117만명 기록
장릉·사릉 등 실제 문화유산 공간 재조명


서울 한 영화관에 걸린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연합뉴스]


[헤럴드경제=이정환 기자] 한국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스크린 밖 역사 현장까지 다시 불러내고 있다.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이 영화는 8일 기준 누적 관객 1117만명을 기록했다.

전체 기준으로는 역대 34번째, 한국 영화로는 25번째 천만 영화다. 영화의 흥행은 비운의 군주 단종의 삶에 대한 대중적 관심으로 번지며 장릉과 사릉, 종묘 영녕전 같은 실제 문화유산 공간까지 재조명하고 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도 이날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영화 흥행을 축하하며 단종 관련 유산을 직접 소개했다. 허 청장은 “조선의 아픈 역사 중 하나인 ‘단종’의 서사가 국민적 관심을 받게 돼 국가유산청장으로서 감회가 매우 남다르다”고 밝혔고, “영화 속 주인공이 잠들어 있는 공간을 소개하겠다”며 강원 영월 장릉과 경기 남양주 사릉, 서울 종묘 영녕전의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다. 이어 영화의 감동과 여운이 문화유산 현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영화가 끌어올린 울림의 중심에는 단종의 짧고 비극적인 생애가 있다. 단종은 조선 6대 임금으로 즉위했지만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노산군으로 강등됐고, 결국 영월로 유배돼 1457년 생을 마감했다.

영화는 이 역사적 비극 위에 유배지에서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단종의 모습을 겹쳐 놓으며, 권력 다툼에 희생된 어린 임금의 고독과 상처를 보다 인간적인 온도로 풀어낸다. 그래서 관객은 한 편의 사극을 넘어, 역사에 남은 가장 아픈 왕의 시간을 현재의 감정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8일 관객 수 1천100만여명을 기록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역사적 배경이 된 강원 영월군 장릉의 단종 어진에 관광객들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연합뉴스]


단종의 삶은 오늘날 영월 장릉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장릉은 단종을 모신 왕릉으로, 단종이 죽은 뒤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이가 없자 영월 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중종·선조 대를 거치며 묘역이 정비됐고, 숙종 24년인 1698년 단종이 복위되면서 비로소 왕릉의 이름과 격식을 되찾았다. 권력에서 밀려난 군주의 쓸쓸한 죽음과 뒤늦은 복권의 역사가 한 능역 안에 함께 새겨져 있는 셈이다.

단종의 비극은 왕비 정순왕후의 삶에서도 이어진다. 남양주 사릉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자 궁을 떠나 동대문 밖 정업원에서 살았고, 오랜 세월 단종을 그리워하며 한 많은 삶을 보낸 것으로 전한다. 비록 단종과 정순왕후의 무덤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두 사람의 신주는 서울 종묘 영녕전에 함께 봉안돼 있다. 생전에는 함께하지 못했던 부부가 사후에야 같은 전각 안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결국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단순한 박스오피스 기록을 넘어선다. 영화가 불러낸 단종의 서사는 관객의 눈물을 지나 실제 문화유산 공간으로 이어지고, 허민 청장의 말처럼 그 감동은 이제 장릉과 사릉, 종묘 영녕전에서 다시 한번 현실의 역사와 만난다. 스크린 속 이야기로 시작된 천만의 열기가 500여년 전 비운의 왕과 왕비를 오늘의 기억 속으로 다시 불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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