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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제공]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요?”
지난해 12월, 동북아역사재단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나온 이재명 대통령의 이 한마디는 한동안 잠잠했던 ‘환단고기’ 위서(僞書) 논쟁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고조선 이전의 고대 국가를 다룬 ‘환단고기’는 1970년대 말 세상에 등장한 이후 일부 민족주의 사학계에서 빠르게 확산한 역사서다. 그러나 1980~90년대 본격적인 검증이 이루어지면서, 학계에서는 사실상 이를 ‘가짜 역사서’라는 판명을 내린 상태였다.
그런데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대중화되고 관련 콘텐츠가 꾸준히 유통되면서, 음모론과 결합한 ‘환단고기’ 서사는 2000년대 들어서도 열성 지지층, 이른바 ‘환빠’를 양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실 여부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됐고, 일부 대중은 여전히 그것을 ‘진실’로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역사 해석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가짜뉴스’가 어떤 방식으로 생성되고 확산하며, 결국 사실처럼 굳어지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전형적인 사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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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첫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베팅 온 팩트’는 ‘환단고기’의 사례와 같이 진실처럼 포장된 거짓들이 우리의 일상을 자연스레 파고들고, 대중들이 그것을 의심 없이 소비하는 ‘가짜뉴스의 시대’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출연자들이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앞에 놓인 뉴스의 진실을 가리는 리얼리티 서바이벌이다.
연예인, 평론가, 유튜버, 정치인 등 총 8인으로 구성된 참가자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서바이벌 우승 사냥꾼 장동민이다. 장동민은 방영 전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서바이벌에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는 시점”이라면서도 “뉴스의 진위를 가리는 프로그램으로 나의 다른 능력치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치 평론가 진중권 교수, 시사 유튜버 정영진과 헬마우스, 코미디언 이용진, 가수 겸 배우 예원,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 최고위원 박성민, 국민의힘 전 대변인 겸 변호사 강전애 등이 이번 ‘베팅 온 팩트’에 합류했다. 진중권과 이용진, 예원을 제외하면 정치·시사와 가깝지 않은 시청자들에게는 낯설 수 있는 이름들이다.
프로그램은 tvN의 인기 예능 시리즈 ‘더 지니어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세트장으로 시청자를 초대하고선, 곧장 ‘가짜뉴스’를 가리는 첫 번째 게임으로 참가자와 시청자들을 밀어 넣는다. 그들 앞에 놓인 것은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설계된 온라인 뉴스. 참가자들은 2명씩 짝을 이룬 후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는 공간에서 그들의 생각과 지식만을 가지고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사실상의 두뇌 서바이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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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되는 뉴스들은 소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킬 법한 자극적이고도 논쟁적 이슈이다. 그 범위는 한 지자체가 연 미혼남녀의 만남 행사에서 남자 참가자들에게만 ‘범죄 이력’을 요구해 논란이 됐다거나, 한 피트니스 센터가 ‘노 시니어존’을 선언하고 나섰다는 소위 ‘차별’ 관련 뉴스에서부터 우리나라의 남녀 임금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꼴찌라는 경제 이슈까지 아우른다.
흥미로운 것은 참가자들마다 다른 뉴스 판별 방식이다. 뉴스 고관여층인 시사 유튜버 정영진은 실제 읽는 뉴스를 기억해 내 진실과 거짓을 가려낸다. 변호사인 강전애는 논란이 된 이슈가 법으로 타당한지를 분석한다. 누군가는 마침 뉴스의 배경과 자신의 고향이 겹친 덕에 거짓의 단서를 찾거나(이용진), 혹은 기사의 사진을 사건이 발생한 시대의 분위기에 대입하는 방식(장동민)으로 추리를 펼치기도 한다.
이처럼 각기 다른 배경과 관점을 지닌 참가자들이 동일한 정보를 두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모습은, 오늘날 뉴스 소비 환경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같은 뉴스를 접하더라도 개인의 경험, 지식, 신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그 결과 ‘진실’에 대한 판단 역시 크게 엇갈릴 수 있다는 점을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민종 PD는 “평소 같은 뉴스를 두고도 어떤 사람들은 진짜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가짜라고 말하는 점이 재미있었다”면서 “이런 현상이,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마다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해 다양한 배경의 분들을 섭외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 첫 번째 게임의 결과가 말하는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뉴스를 평소에 많이 접하고, 관련 전문 지식이 많다고 해서 가짜뉴스를 잘 구분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검증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라는 성찰까지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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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두 번째 게임은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으로 참가자들을 데려다 놓는다. 방금까지 ‘가짜뉴스’에 휘둘렸던 이들은 이제 다양한 이슈에서 대중이 자신들의 입장을 따르도록 ‘선동’ 해야한다. 주제는 세 가지. 고객이 펜션을 청소해야 하는가, 교권 침해를 생기부에 남겨도 되는가, 그리고 문자·DM도 스토킹 처벌 대상에 포함해야 하는가 등이다.
‘프로파간다’라 이름 붙인 이 게임의 이름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역시나 여론이 익숙한 진중권 교수와 헬마우스 등이다. 이들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제1의 목표라면, 그것이 거짓이어도 상관이 없다’는 선동의 원리를 설파하며 자신들만의 논리를 만들어 나간다.
이러한 방식으로 프로그램은 단순히 가짜뉴스가 확산하고 대중이 그것을 접하는 현상적 접근을 넘어, 어떻게, 왜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순간까지도 놓치지 않고 따라간다. 우리가 미디어나 온라인을 통해 무심코 접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수많은 ‘발언’과 ‘메시지’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장면이다. 참가자들이 심사단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비교적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박성민과 예원의 활약이 돋보인다.
반복되고 공유되는 정보는 때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진실’의 외형을 띠게 된다. ‘베팅 온 팩트’는 바로 이 지점을 예능이라는 형식을 통해 직관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시청자는 참가자들의 판단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내는 일이 결코 쉽고 단순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 ‘베팅 온 팩트’는 정답을 맞히는 서바이벌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그 판단은 과연 얼마나 근거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다시 프로그램 안에 있다. 진실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가까워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미디어나 공공의 몫에 그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책임이기도 하다. 가짜뉴스의 시대, 이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뉴스’와 ‘토론’이 예능적 도파민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증명은 덤이다.







